세종대왕님께 고발합니다
세종대왕님께 고발합니다
  • 안도
  • 승인 2015.11.11 18: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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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어김없이 한글날이 찾아와 반짝 행사들이 지나갔습니다.

 전하께서 만들어주신 한글은 아무리 자랑해도 지나치지 않는 우리의 국보입니다. 오늘날에는 한국을 인터넷 시대의 승리자로 만들어 준 날렵하고 세련된 무기가 되었습니다. 한글은 누구에게나 쉽게 글눈을 깨쳐 정보 지식의 평등을 이뤄주는 민주, 조화의 표상입니다.

 그래서 우리 후손들은 건국 초기였던 1946년부터 10월 9일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하고 기념해 왔으며, 1948년에는 제헌 국회가 국어사랑으로 나라의 뼈대를 이루자는 ‘한글 전용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후 10월 9일이면 온 국민이 함께 즐기는 큰 잔칫날이요 문화의 날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말로만 한글사랑을 외치고 제 나라 글을 업신여기며 망국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 늦었지만 전하께 고발을 하고자 합니다.
 

 법무부를 고발합니다

 ‘법령문’이란 법령에 쓰인 문장을 가리키며 법률과 명령을 함께 이르는 말입니다. 따라서 법령문은 일반 국민들이 읽어서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국가의 법은 마땅히 공용어를 규범에 맞게 바르고 쉽게 사용하여 국민의 언어생활에 귀감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행 법령문은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에 귀감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 가운데 법률용어가 한자어를 제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법률들을 이해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워하거나 생활에 불편을 느낍니다.

 예를 들면 <본장에 규정한 등기를 해태한 때 - 민법 제97조> <물건의 소유자가 그 물건의 상용에 공하기 위하여 자기소유인 다른 물건을 이에 부속하게 한 때에는 그 부속물은 종물이다. -민법 제100조 제1항> 이 모두가 민법 조항의 일부입니다.

 해석해 보면 해태하다는 것은 게을리 하다는 뜻이고, 상용에 공하다는 말은 일상적으로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종물은 딸린 물건이며 은비는 숨겨서 비밀로 한다는 말입니다. 법령집에는 이러한 용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국어를 전공한 필자도 난해한 용어들입니다.

 법은 그 국가와 국민을 든든히 지켜 주는 공공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법이 지나치게 어려울 때는 국민 대다수가 제대로 지키기도 어렵고 법에 근거하여 자기의 권익을 제대로 주장하기도 어렵습니다. 전하께 고발하오니 앞으로 이들이 법령을 우리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바꾸라고 명령하소서.
 
 도로공사를 고발합니다

 지난달 공휴일이 겹치면 하루 더 쉬는 정책에 따라 유독 길었던 올 추석 연휴 딸네 집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고속도로 표지판들의 이국의 땅처럼 낯설었습니다.

 고속도로(High Way) 자체가 외국에서 들어왔기 때문인지 표지판에서 영어로 된 용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고속도로는 빠른 도로가 되어야 하며 하이패스는 빠른 통행이 맞습니다. IC는 Inter Change의 약자로 고속도로와 일반 도로를 연결하는 나들목이지요. 분기점은 분발해서 일어난 지점이 아니고 갈림길이며 노견은 길 어깨가 아니고 갓길입니다. 서행은 서쪽으로 가라는 말이 아니고 천천히 가라는 뜻입니다. 톨게이트는 통행료 받는 곳입니다.

 전하께서 만약 다시 돌아와 민정을 살피시러 전국을 순회하신다면 국어나 영어사전을 들고 다니셔야 합니다.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가장 아득히 멀다고 밝을 명(明)자가 아니고 어두울 명(冥)자를 쓰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이 외에도 고발할 사항들이 너무 많사오나 금년에는 위 두 곳으로 마치오니 한글전용에 이바지하라는 타산지석의 벌을 내리소서.

 안도<전북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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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찾아온손님 2015-11-26 00:58:06
좋은 글이네요. 제 나이도 그리 많지 않지만 부모님과 시내 길을 같이 걷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영어간판들 투성이라 참으로 한탄스럽습니다. 배움의 기회가 없는 부모님들은 이시대에 어느거리 어느가게 앞에서 약속장소로 잡을까요. "어머니! 유플러스 스케어 간판 앞에서 만나자고 전화드렸는데 왜 엉뚱한 곳에 계셔서 제가 찾고 시간낭비하게 만드시냐고요! 네?" 자식의 핀잔으로 미안해하시는 어머니가 불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