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찾아서 : 이 설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찾아서 : 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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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1.0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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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설(1850~1906)  

이설 선생은 충남 홍성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남당 학통을 잇는 이돈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문과에 급제하고 사간원 정언과 교리를 비롯하여 동부승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정부에서 계속하여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그때마다 상소를 올려 정국의 문제점과 방향을 비판적으로 지적하였다.

선생을 비롯한 홍주지역 유생들은 위정척사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선생의 위정척사론은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따라 척사의 대상을 달리하였다. 초기에는 소중화를 지키고 사학을 물리쳐야 한다는 “위소중화衛小中華 척사학斥邪學”의 이론을 형성하였으나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항복조약이라고 통박하면서 척왜론을 주장하였다. 1894년 갑오변란에 즈음하여 척왜론은 일본과의 결전을 감행하자는 ‘대일항전론’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선생의 위정척사론은 의병투쟁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선생은 1894년 갑오변란에 사직하고 낙향한 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항거하여 홍주의병에 참여하였으나 내부 반역자의 밀고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김복한과 함께 상경하여 매국적을 처단하고 일본과의 전쟁을 감행할 것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다 또 다시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석방된 이후에도 민종식과 안병찬 등에게 의병 봉기를 권하는 등 항일투쟁에 매진하였으나 옥고의 후유증으로 순국하고 말았다.

〈전주보훈지청 제공, 문의 ☏063-23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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