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과서’를 기대한다
‘대안교과서’를 기대한다
  • 이동희
  • 승인 2015.11.0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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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고시를 강행했다. 역사책을 기술해야 할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이 교과서를 가지고 직접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대다수 초?중등 교사들이, 그리고 이 교과서로 공부해야 할 당사자인 학생들도 나서서 반대를 외쳐댔건만 정부는 반역사의 길로 줄달음쳐 가고 말았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21세기 백주에 벌어진 셈이다. 민주투사들의 고귀한 희생이 물거품이 된 형국이어서 참담하기 그지없다.

시대의 소통방식에 어울리지 않게 총리는 정부고시를 강행하며 담화문을 발표했다. 뭔가를 전달하여 소통을 도모하려는 말하기 형식이 오히려 ‘어불성설(語不成說-조리가 맞지 않아 도무지 말이 되지 않음)’로 일관하여 소통에 지장을 준 꼴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시민의식과 나라의 품격에 커다란 상처를 입혔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이 국민을 향하여 하는 말을 대다수 국민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총리 담화 99.9%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장) “독립운동가 공적은 지우고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 미화 교과서 될 것”(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 아들 차영조) “민주국가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보 같은 정부 때문에 바보가 되지 않는 국가란 뜻도 된다.”(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황교안 ‘고교 99.9% 편향 교과서’ 거짓말만 늘어놓은 총리”(한겨레 보도문) “교과서가 좌편향 된 게 아니라 국정화를 시도하는 그 자체가 벌써 좌편향이고 종북”(조광 고려대명예교수) 등의 반응이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한다.

그런 중에도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의 반응에서 일말의 희망을 갖게 한다. “국정화 선언은 정권 입맛에 맞는 역사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 국정교과서라고 하지만 실질은 정권교과서”(한겨레 인터뷰)라며, 타시도 교육감들과 공조하여 ‘대안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현장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공언하였다.

대안으로 내놓을 역사교과서가 교단교사의 교수학습 보조 자료가 될지, 아니면 국정교과서가 저지르게 될지도 모를 왜곡하고 편향된 역사를 바로잡는 교과서가 될지, 그도 아니라면 다양한 역사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를 집대성한 교과서가 될지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지방교육의 책임자로서 보이는 대응방식에 일말의 기대를 가지게 한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프랑스, 독일, 스웨덴, 핀란드 등 교육선진국들에서는 국정교과서란 있을 수도 없으며, 나아가 어떤 과목에서는 ‘한 권의 교과서’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교육과정이 정한 내용에 따라 교단교사의 판단으로 얼마든지 다양한 교재를 활용하는 교수학습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체제이기 때문에 “핀란드의 15세 이하 학생들은 시험시간에 동일한 시험지가 아닌, 학생들이 각자 다른 문제지”(이문재 경희대 교수)를 받아드는 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선진국들의 교육현실이 부럽기만 하다.

이런 계제에 지방교육의 수장이 정부의 강권에 맞설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은 것은 절망과 실의에 빠진 역사학계와 교육현장에 희망의 씨앗이다. 국정화로 탄생할 유일한 역사교과서가 정부의 강제력에 의해 교육과정으로 편성되고, 이를 바탕으로 교수학습이 전개될 것이다. 이럴 때 지방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청이 나서서 깊이 있고 다양한 ‘[대안]역사교과서-역사교육 보조자료’를 내놓는다면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러한 지방교육청의 시도와 노력을 중앙정부는 막을 구실도 없으며, 현장교사들이 활용하는 교수학습 보조 자료를 통제할 명분도 없다. 교육현장에서 ‘[대안]역사교과서-역사교육 보조자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국정화로 탄생할 역사교과서가 역사교육의 반면교사가 되어 오히려 그 반사적 효과를 배가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김승환 교육감이 공언한 대안에 큰 희망을 가진다.

“끔찍한 지금의 세계가 기나긴 역사의 발전 속에서 보면 그저 한순간일 뿐인 이유를, 숱한 혁명과 봉기를 이끈 주도적 힘의 하나는 언제나 희망이었음을, 내가 미래를 생각하면서 여전히 그래도 미래는 희망이라고 보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사르트르, 스테판 에셀『분노하라』에서) 나라의 지성과 역사의 정의를 문맹으로 치부하는 철면피한 권력에 맞서는 길은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대안교과서에 희망을 거는 이유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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