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끝 핏빛으로 영롱한
손톱 끝 핏빛으로 영롱한
  • 진동규
  • 승인 2015.11.0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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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한 편이 전해왔다. 등기우편이었다. 등기우편은 아파트 입구의 편지함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고 수취인의 손에 쥐여주는데, 본인이 아니면 주지 않는다. 가족이라 해도 어떤 관계인지까지 밝혀서 사인을 받아간다.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기에 등기우편으로 보냈을 터이다. 우체국에 와서 찾아가라는 쪽지 한 장이 현관문에 붙어 있었다. 기한이 넘으면 반송한다니 우체국에 쫓아갈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내 집안 최고 웃어르신 할아버지에 관한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들딸 모두 서울에 사는 바람에 전주에 계셨다. 할머니까지 여의고 홀로 사셨다. 평생의 습관처럼 아침 일찍 출근하시고 점심시간 맞추어 가까운 식당을 찾아 점심 드시면 정확히 시간 지켜 퇴근을 하셨다. 혼자 쓰시는 사무실이니 출근부는 없었지만, 누구든 연락을 취하거나 직접 뵙고 싶은 사람은 사무실로 찾아가면 되었다.

 원체 규칙이 엄한 분이셔서 혼자 결정하시는 일이지만 휴가를 내는 일도 제철에 맞추어 날짜를 정하셨다. 평소 출근하시면 배달되는 신문들을 빠짐없이 다 읽는 일이 일과의 첫 업무이셨다. 다음으로 치르시는 일과를 세세히 알아차릴 수는 없지만, 휴가를 차리시는 일을 본 일이 있었다. 이번 휴가철에 읽어야 할 책 몇 권을 꼭 챙겨 떠나셨다. 일상의 시간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던가를 먼발치로나 그려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금 세수 아흔을 넘기셨다. 기억 속 어느 날인가, 6·25도 일어나기 전 총각 시절이었던가 본데 고향인 무장의 어느 직장에서 같이 근무하던 어느 분께 도움을 받은 일을 떠올리셨다는 내용이다. 무엇을 어떻게 도움을 입으셨는지는 모르지만 그 일은 육이오를 치르면서 그리고 또 거처를 옮기고 어지러웠던 시절을 지나며 잊고 계셨던 모양이다. 어언 세월은 흘러 지금에 와 서울 사는 아드님 곁에 계시는데 이제야 그 일을 떠올리셨다는 얘기다. 소중한 기억 하나 귀하게 다독이고 다독이신 것이리라.

 그때 그 인물들은 이미 이승을 떠나셨고 찾고 찾아보니 그 가족들마저 다 떠나셨다. 그런데 막둥이 아들 하나 서울에 사는 것을 아셨다는 것이 아닌가. 고향 어르신, 전북의 어른으로 KBS에서 주관했던 그 상을 안으신 분이다. 존함으로만 모셨던 고향 어르신의 전화를 받고 뵈었다는 것인데 얇지 않은 돈 봉투를 앞에 놓으시더라는 내용이었다.

 고향에 가서 부모님 유택을 찾아 읽어 드렸다는 편지까지 동봉해 보내온 등기우편물이었다. 먼먼 기억의 사금파리 한 조각 반짝하는 빛, 몇 날을 어르시며 다듬고 다듬어서 손톱 끝의 핏빛으로 영롱한 것을. ‘요즘 세상 이야기는 아니지.’ 내게 편지를 보내준 친구,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글이었다.

 진동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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