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째 세계문화유산
12번째 세계문화유산
  • 권익산
  • 승인 2015.10.2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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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을 포함한 백제역사유적 지구를 우리나라에서 12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이로써 전북은 고창의 고인돌 유적을 포함하여 두 개의 세계유산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일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한 가지만 충족해도 되지만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이 기준을 두 가지나 충족하였다. 두 번째 기준인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과 세 번째 기준인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이 그것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재질, 기법 등에서 원래 가치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즉 중간에 변형되거나 훼손되지 않아야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익산의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은 개발이 안되었다는 이유로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가능하였다.

특히, 왕궁리 유적은 고대 도성이 갖춰야 할 조건을 모두 갖춘 보기 드문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었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도성을 만들 때에는 왕이 거처하며 사무를 보는 궁성을 만들고, 궁성 밖에는 귀족들과 백성들이 사는 마을과 시장을 조성하였다. 또, 근처에 왕실과 국가의 안위를 비는 절을 지어 운영하였다. 그리고 도성을 방어하기 위하여 나성이라는 외곽 성을 만들었다. 왕궁리 유적의 경우 궁성과 절이 있고, 주변에 10개에 달하는 산성이 외곽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 시장이나 관청, 민가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주변 지역에 대한 조사와 발굴을 계속한다면 머지않아 발견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유네스코에서는 왕궁성이 고대 한중일 삼국의 문화 교류의 흔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하였다. 왕궁성의 앞부분에 사무공간인 대형 건물을 두고 뒷부분에 정원을 배치하는 방식은 중국 북위 낙양성의 궁성 배치 방식과 비슷하며, 정원시설이나 대형 화장실 등의 부속시설은 일본 헤이세이궁 유적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유네스코가 백제의 활발한 대외 교류와 일본에 대한 문화 전파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일이다.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봉영기에 무왕의 왕비가 우리가 알고 있던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최고 귀족인 사택적덕의 딸로 되어 있어 혼란이 있다.

하지만 익산에는 무왕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마룡지가 있고, 42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혼란스러운 백제의 중흥을 위해 익산으로 도읍을 옮겼으며, 미륵사라는 절을 지어 국력을 하나로 결집시키려는 노력을 벌였던 무왕의 왕릉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 보아 삼국간의 마지막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무왕이 익산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답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폐사지를 최고의 답사지로 꼽는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폐사지의 주춧돌에 앉아 그 곳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것이 거대한 유적을 보는 것보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유럽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는 한 분과 폼페이 유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책이나 TV에서 볼 때에는 멋있어 보였는데 처음 찾아간 폼페이는 무너져 내린 돌덩어리만 있어 실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가다 보니 그 무너져 버린 돌덩어리 위로 로마 시대의 건물을 상상하게 되고, 그 다음번에 갔을 때는 로마의 여인들과 어린이들이 건물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역사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시간을 가지고 자주 찾다 보니 점점 보이기 사작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학생들도 공부에 바쁘고 힘들지만 가을이 가기 전에 미륵사지나 왕궁리 유적에 가서 백제인의 숨결을 느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미륵사지의 무너진 건물 주춧돌에 앉아 보면 석탑을 다듬는 석공의 망치질이 보일 수도 있고, 전쟁터에 나간 아들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백제 어머니의 모습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20년 뒤 열심히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권익산 원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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