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도입과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이대로 밀어붙이기?
원격의료 도입과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이대로 밀어붙이기?
  • 김형준
  • 승인 2015.10.28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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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대한 여,야, 시민사회의 논쟁이 뜨겁지만, 상대적으로 주목받지는 못한 이슈 중에는 보건 및 의료에 대한 매우 중요한 내용도 있었다. 바로 박 대통령이 직접 국회에서 의료법 개정안과 국제의료사업지원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이른바 의료산업에 대한 경제활성화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재차 촉구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27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가진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중요한 경제활성화 법안들이 수년째 처리되지 못하고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다"며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이날 박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경제활성화 법안 중 의료관련 법안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의료법, 국제의료사업지원법 등 모두 3가지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비영리목적을 가진 의료법인 등이 영리사업이 가능한 자회사를 설립하고 호텔, 장례식장, 요식업 등에 진출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핵심 골자이며 의료법 개정안은 의사들이 대형병원 위주로 의료전달체계를 왜곡시킬 것이라 반대하는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또한, 국제의료사업자원법은 외국자본 등이 영리병원을 위한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는 극구 부인하지만, 보건의료에 대한 영리화, 민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큰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정부 계획대로 의료서비스까지 이 법을 적용할 경우 보건의료정책 결정의 주도권이 보건복지부와 의료계가 아닌, 재정부처와 재벌과 같은 재계로 넘어갈 우려가 크다는 반발에 부딪혔고, 그래서 3년째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었던 법안이다. 반대 측에 의하면 한마디로 이 법안으로 인해 보건의료의 공공성이 크게 훼손되고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의료민영화. 영리화로 변질하여 결국 국민들에게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원격의료 도입은 정부에서는 동네의원과 의료 취약지구에서만 적용할 것이라 말하나 원료의료를 위한 첨단 IT 인프라나 네트워크의 설치, 모바일진료 등 동네의원이 대형병원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는 애초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대부분 전문가들이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도 현재 일부 대형병원 등은 이미 원격의료를 통한 수익창출 모델의 개발을 마친 상태이다. 서울대병원과 SK텔레콤이 이미 '헬스커넥트'라는 회사를 만든 상태이고 삼성병원-삼성전자, 연세대병원-KT가 원격의료사업을 공동 추진 중인 것은 의료계에서는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졌다. 결국, 이런 원격의료는 1차, 2차, 3차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를 왜곡시키고 대형병원과 재벌기업으로 하여금 의료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시켜 의료비 상승과 의료 공공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는 경고하고 있다. 마치 재벌들의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지배하고 대표적인 서민 자영업종인 떡볶기, 김밥 사업까지 차지하려는 것과도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또한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은 결국 자회사를 통한 병원들의 영리사업을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으로 껍데기만 비영리 의료법인일 뿐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허용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교육비가 부족하니 학교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 식당도 운영하고 문방구도 만들고, 서점과 교복을 만들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익을 남겨 그 돈으로 학교를 운영하라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경제가 침체기에 빠지고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결국 투자가 일어나지 않아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가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이로 인해 경직된 투자 환경과 규제를 철폐해서 경제에 창조적 활력을 불어넣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현 정권의 정책은 당연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첨단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커지면서 의료도 과거의 공공성과 보건적 측면에서 산업으로서의 측면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의료산업에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길이 막힌다고 신호등도 없애고 횡단보도도 없애면 결국 더 큰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의료의 산업적 성격이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나 '공공성'과 '보편성', 그리고 '휴머니즘'이라는 의료의 본질까지 훼손하면서 진행되는 의료산업화, 영리화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우리 사회의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걱정은 지나친 기우일까? 분열을 부추기는 무조건 밀어붙이기식의 방법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숙된 논의와 합의를 통한 사회 통합을 이끌기 위한 노력을 정부가 나서줄 길 기대해본다.

김형준<신세계효병원 진료원장/부안군 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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