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덕적 사회 속의 작은 존재들
비도덕적 사회 속의 작은 존재들
  • 홍용웅
  • 승인 2015.10.2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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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정치사상가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1932)가 지금까지 지구촌 정치사회계에 미친 영향은 심대하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본래 인간 개개인은 도덕적인데, 이들이 하나의 단체나 사회를 구성하게 되면 가차없이 비도덕적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룸 사업자 A씨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월세를 깎아주거나 세가 몇 달 밀려도 기다릴 줄 아는 ‘도덕적’(선한) 인간이다. 하지만 그가 원룸 사업자단체의 회원으로서 취하게 되는 행위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월세 상한제나 세입자 보호제도를 도입,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될 우려가 생기면 집단적으로 길거리 투쟁에 나서는 등 약자인 세입자에 대한 배려 없는 ‘비도덕적’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양보와 선행을 밥 먹듯 행하는 도덕적 인간도 집단이익을 위해서는 한 치 양보를 모르는 비도덕적 사회의 일원으로 돌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기득권 지키기를 목적으로 한 이익단체가 창궐하고 있다. 갖가지 고급 자격증 가진 사람들의 단체가 그렇고, 규모 있는 기업들이 결성한 모임도 그렇다. 사용자인 경영주들이 모인 결사체가 있는가 하면, 산업분야별로 결속된 이런저런 협회 역시 셀 수 없이 많다. 교수, 기자, 배우, 가수, 문인 등 지식과 예술을 먹고사는 직업에도 어김없이 단체가 형성되어 있다. 모두 나름대로 자신들의 직역, 직능의 자존심과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세월의 흐름이 초래한 시대정신의 변화와 함께 약한 사람, 없는 사람, 못 배운 사람들도 자신들의 권익 수호에 나섰다. 소비자, 학생, 세입자, 작은 기업들은 ‘비도덕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의 힘을 모아야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아마 노동조합일 것이다. 또한 여성, 장애인, 소수민족으로 대표되는‘마이너리티(Minority)’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 채용의무 비율 설정 등 새로운 제도적 장치도 생겨났다. 그리하여 정치와 사회는, 역부족이긴 하지만, 강한 그룹과 약한 그룹 간의 힘의 균형을 지향하게 된다.

만약 이러한 제어장치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세상은 분명히 약육강식의 끔찍한 정글이 되었을 것이다. 니버(Niebuhr)는 힘주어 주장한다. 비도덕적인 사회에서 정의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약자들의 단합된 힘과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자비심이나 신앙에만 의존해서는 정의의 실현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도덕적인 인간도 사회라는 무대에서는 비도덕적인 역할 연기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제도적 보장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도처에서 듣는다. “노조 때문에 기업을 못해 먹겠다.”, “여성우대가 지나쳐 남성들이 역차별 받는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일종의 규제다.”……. 유의 볼멘소리 말이다.

경제 분야에서 가장 보편적인 비판은 ‘반시장적(反市場的)’이라는 표현이다. 이는 이른바 시장주의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말인데, 기업 활동을 손톱만치라도 제한하는 모든 조치를 이처럼 매도하면서 색깔론을 들이대어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비도덕적 사회를 교정할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필수불가결하다.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정책도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한 사회의 건강은 다양한 존재의 공생으로 지켜지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 대동맥뿐 아니라 모세혈관도 중요하듯 말이다. 전북도가 어느 지자체보다 먼저 경제민주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래서 참신하고 정의로운 시도다.

다만, 사회 전체를 위한 파이 키우기에는 강자, 약자 간 휴수동행(携手同行) 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경제통상진흥원 역시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 소상공인 지원과 더불어, 동반성장을 통한 파이 키우기에 더욱 노력할 것이다.

홍용웅<전북경제통상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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