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과 교과서
역사교육과 교과서
  • 권익산
  • 승인 2015.10.0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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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역사교사라는 이유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학창시절 수업 도중에 교과서를 내팽개치면서 욕을 하시던 국사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 때 그 선생님이 멋있어 보였다는 것이다. 5공화국 시절 어린 학생들의 눈에도 선생님이 교과서를 집어던지며 하시던 이야기에 공감했던 것이다. 자네도 수업 시간에 책을 던지냐는 친구들의 농담에 이제는 교과서가 바뀌어 내용도 다양해지고 수준도 높아지고 있으니 그런 일은 없으며 조만간 우리나라 교과서도 선진국처럼 될 거라고 얘기해 왔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러한 필자의 대답을 궁색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구상에서 국정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극소수이며 이들 나라의 공통점이 전체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는 일부 이슬람 국가와 수령과 장군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북한이 대표적인데 이들 나라가 국정제 역사교과서를 고집하는 이유는 국민에게 특정 역사 인식을 주입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검인정 체제라고 해서 저자가 마음대로 교과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가 정한 교과서 서술 지침에 따라 서술해야 하며 교육부의 심의를 통과 해야만 출판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정부가 승인한 교과서만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으며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여러 가지 역사 해석 때문에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것이라는 주장은 식약청이 허가는 했지만 여러 가지 진통제가 시중에 팔리고 있어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하니 한 가지 제품만 유통시키자는 주장이나 마찬가지이다.

한국사회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역사교육이 올바른 역할을 못했다는 반성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 반성은 하나의 교과서로 시험에 나오는 내용만 달달 외우는 교육을 해왔다는 반성이다. 다양한 사료를 읽고 토론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와 어떻게 다른지 경험하도록 하지 못하고, 다른 것과 틀린 것의 차이를 이해하는 교육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다.

이러한 반성에서 교육의 다양성과 창의성, 비판의식이 강조되었고 역사교사들도 역사적 사건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 쟁점이 되는 사건에 대한 토론, 역사적 인물이 되어 생각해보기 등 다양한 수업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수업을 위해서라도 다양한 학습 자료가 실린 교과서를 선호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학교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교과서에 있는 좋은 자료를 찾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역사과목을 암기과목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 과거의 사실 자체가 생소하여 새롭게 외워야 하는 경우는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별로 중요하지 않는 연도나 이상한 이름까지 시험에 나오니 사소한 것까지 외워야 했던 경험에서 나온 생각일 것이다.

현재의 검인정 제도 아래에서는 교과서 별로 내용 차이가 있으므로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내용과 관계를 물어보는 문제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그런데 전국의 학생이 하나의 교과서로 배운다면 출제자는 난이도 높은 문제를 만들기 위해 사소한 연도나 이름을 묻는 문제를 출제할 가능성이 늘어난다는 것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일본의 우익들은 과거 침략을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을 자학사관이라고 비난하면서 군국주의 침략의 시대마저 자랑스럽게 생각는 역사교육을 부르짖고 있다. 그런 일본 우익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한국의 역사교육이 자학사관에 물들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이 친일과 독재를 비판하고 반성하자는 것은 자학사관이므로 교과서에서 빼자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 역사교육에 대한 모독이다.

식민지와 독재를 경험한 나라 가운데 전쟁이나 혁명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주적인 발전을 이룩한 대표적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점은 세계가 인정하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이다. 시련과 실패는 빼고 영광과 성공만을 가르치는 것은 역사교육이 아니다.

권익산 원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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