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증후군과 세대갈등
명절증후군과 세대갈등
  • 김형준
  • 승인 2015.09.29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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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대체휴일이 정해지고 처음 맞이한 추석 명절 연휴도 끝나고 다시 일상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릴 때는 마냥 기다려지고 즐거웠던 명절이 어른이 된 후 어린 시절만큼 설렘은 없지만, 명절은 명절인지라 왠지 모를 느낌이 항상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명절을 전후로 정신과 진료실을 찾아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종 스트레스 질환을 호소하는 경우인데 몇몇 환자는 증상이 심하여 장기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명절증후군은 주부들에게 나타나는 데 각종 음식 장만과 산더미 같은 설거지, 일가친척 잔심부름을 생각하면 몸과 마음은 명절 전부터 이미 아프기 시작하기 마련이라고 한다. 명절 증후군이란 주로 주부들에게 명절을 전후해서 소화불량, 전신 근육통, 만성 피로감, 감기 증상 같은 신체 증상뿐만 아니라 짜증스러움, 우울증, 불면증 등 정신적 증상이 단독 또는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러다 보니 명절에 시댁에 가는 것이 싫고 짜증이 나면서 남편과 다투게 되고 시댁과의 갈등도 심해져 내년 반복되는 문제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경우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런 명절 스트레스는 가사 노동의 증가에 따른 신체적 피로감 때문만 아니라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덕담이라고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살이 찐 거 아니라는 외모 지적부터 아이들의 진학·성적 문제, 취업, 결혼, 경제적인 문제 등이 대화의 주제가 자칫 상처가 될 수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편들도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짜증내고 서운한 감정을 보이는 아내를 보는 것도 괴롭지만, 장거리 운전과 연휴기간 전후 더욱 가중되는 업무도 부담인 경우가 많다. 또 명절을 앞두고 거래처나 상사 등 주변 지인들을 챙겨야 하는 경우도 많고 경제적 부담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부들만 명절 스트레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들도 명절증후군이 있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스트레스인데 우선 익숙하지 않은 여러 가족이 모이는 상황이 낯설고 음식, 잠자리 모든 것이 불편하다. 개인적인 요즘 아이들 성향으로 볼 때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친척들이 갑자기 친한 척하는 것도 불편하고 혹시 성적이야기나 취업 등의 화제가 나오면 정말 피하고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서운한 감정이 많다. 평생 혼자 도맡아 치러온 제사와 차례 일을 이제 시집온 며느리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보면서 시어머니도 못마땅할 수밖에 없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도 내 맘같이 않게 거리감을 두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일 것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많은 가정에서 이미 명절은 즐거운 날이 아니라 많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오히려 스트레스만 주는 날이 되었다. 오래전에 핵가족화 된 현대적 가정의 구성원들이 명절 때만 갑자기 전통적인 공동 가족군에 합쳐짐으로써 더 심한 스트레스를 겪게 되고, 이를 잘 극복하지 못해서 몸과 마음에 병이 나는 것이다. 많이 좋아졌지만 사회문화적으로 볼 때 명절 때 모든 일의 부담이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현실이 명절 증후군의 중요한 한 원인이 된다. 부모님 세대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제사는 남편의 조상에게 지내는 데 몸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왜 시댁 식구와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없는 며느리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시댁과 처가는 동등한 관계라고 인식하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자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손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 시댁 식구들을 대신해 제사 음식상을 준비해야만 하는 현실에 불만이 쌓이고 화가 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난 시절 우리나라는 식민지지배와 전쟁, 그리고 산업화와 압축성장, 그리고 IMF 이후 경험한 정체기 등 불과 두·세 세대를 거치면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경험하였다. 이에 따른 세대 간에 가치관이 충돌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서로 입장을 이해하고 공유할 여유도 없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요즘 선거 때 나타나는 세대 간의 표 갈림 현상, 국민연금개혁과 노동개혁을 바라보는 세대 간 갈등의 문제 등 현재 우리나라 각 분야에서 나타나는 세대 간 가치관의 충돌과 명절증후군의 문제가 어쩌면 같은 본질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명절을 건너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어쩌면 명절의 진정한 의미가 이런 세대 간 혹은 가족 간의 갈등을 피하지 말고 이 기회로 성찰하고 서로 입장을 살펴보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너무 빨리 변해가는 세태 속에서 점점 깊어만 가는 세대갈등을 이제는 차분히 온 사회가 성찰하고 이해를 공유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김형준<신세계효병원 진료원장/부안군 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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