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면 북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이 가장 보고 싶어요…. 머릿속에서 아른거리는 고향 모습도 잊을 수가 없죠”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이 다가왔지만, 고향 땅도 밟지 못하고, 보고 싶었던 가족들과 만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고향을 떠나온 북한이탈주민(새터민)이 그들이다.
이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에 명절만 되면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여느 때보다 우울하다.
10년 전 한국땅을 밟은 김모(37·여) 씨도 가슴 한 켠에 고향에 사는 가족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이 돌아오면 북한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에 대한 그리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북쪽 땅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날 만난 김 씨는 한국에 들어오게 된 과정을 시작으로 말문을 열었다.
김 씨는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중국에 가서 한 달만 일하면 다시 북한으로 올 수 있다는 브로커의 말에 속아 98년 12월 중국으로 갔어요. 내 나이 겨우 19살이었죠”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중국에 가보니 인신매매단에 끌려가 중국남자와 3년 가량 살다가 헤어진 후 식당에서 서빙일을 하며 힘들게 살았고, 2004년에는 예기치 않는 교통사고로 얼굴까지 심하게 다치기도 했어요”라고 힘든 기억을 떠올렸다.
교통사고로 다친 부위는 치료가 끝났지만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김 씨는 북한에서의 명절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김 씨는 “고향에서의 추석 분위기도 여기와 비슷해요. 다만, 명절이 다가와도 먹을 것이 부족해 떡이나 두부를 먹는 게 전부였죠”라며 “북한에 있는 가족들도 제대로 명절 음식을 맛볼 수나 있을지 걱정입니다”라고 한숨을 내 쉬었다.
현재 김 씨는 자신과 처지가 같은 북한이탈주민 남편과 함께 새 가정을 꾸렸다. 또한,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김 씨는 “북한 이주민들의 경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한국에서 기댈 곳이 마땅치 않다”면서 “이들이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전북지역에 북한이탈주민은 52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추석 나기를 위해 전북도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도민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연휴를 보낼 수 있도록 시·군, 유관기관과 합동으로 ‘추석 명절 민생안정 종합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 이탈주민을 비롯한 기초생활수급자, 홀로사는 노인, 소년·소녀가장, 다문화 가정 등에 생계비를 지원하고, 사회복지시설 303개소에 대하여 차례상 차리기 비용 등 6,600만 원 상당의 생필품을 지원하는 등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을 골자로 하고 있다.
기연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