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서 정의가 만들어지는 사회
질문에서 정의가 만들어지는 사회
  • 이신후
  • 승인 2015.09.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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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드 스타너는 전세계 스마트 산업에 충격을 준 구글글래스를 만든 주역입니다. 그가 구글글래스를 만들기 전 그를 지칭하던 수식어는 ‘괴짜’, 아니면 ‘정신병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만 있는 것을 실체화하기 위해 몰두 하고 집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보인 괴짜스러운 면모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손가락질 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신념이 있었고,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의 창의성을 넘어선 듯한 ‘괴짜스러움’은 그를 최고의 개발자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최근 뉴스에서 기업 입사 면접을 위해 ‘창의적인 사고’마저도 과외를 받는 사회란 기사를 읽었습니다. 창의성마저도 정해진 답이 있는 사회가 지금 우리나라의 현주소인 것입니다. 그 안에서 한창 꿈을 키우고 상상력을 펼쳐야 할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정해놓은 틀과 아집에 갇혀 겨우 숨만 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입시가 중요합니다. 대학에 가야만, 좋은 성적을 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 또한 어른들이 정해놓은 규칙입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왜 그 규칙을 따라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지금도 캄캄한 어둠 속에 불 켜진 교실에서 아이들은 국·영·수를 공부 합니다. 어른들은 학업에 지친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대학에만 붙으면 된다고 말입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말하며 그들을 독려합니다. 그런데 우린 정말 행복합니까?

한국의 행복지수는 OECD 34개국 중에서 32위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힐링을 이야기하고, 웰빙을 실천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요?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행복을 위한 노력 방향이 잘 못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높은 소득 수준만으로는 우리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장 난 기계처럼 오류코드를 계속 반복적으로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 오류에 싫증이 난 청소년들이 스스로 행복을 찾기 위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업 외에는 경험해본 것도, 다른 대안도 부족한 청소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은 어릴 때부터 함께해온 스마트폰, 컴퓨터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시선을 두게 된 온라인 세상에서 아이들은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는 나의 성적도, 키도, 외모도, 재능도, 가정 형편도 묻지 않습니다. 함께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 서로 어울리고, 즐기고, 위로받고, 독려받습니다. 그 안에서는 내가 최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노력하는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그 안에 있습니다. 노력하는 만큼 보상이 돌아오는 사회,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이상적 사회가 게임 속 세상에는 있는 것입니다.

주변의 청소년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없다면 왜 그런지도 함께 물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혹여라도 꿈이 없다 말하는 청소년에게 ‘넌 꿈도 없냐’라며 타박하진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노력하는 만큼의 보상은커녕 마이너스가 되지 않으면 감사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미래를 꿈꾸라는 것은 오히려 가혹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청소년들이 게임 속 ‘유토피아’에 빠져들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그 안에서라도 자존의 욕구를 채우고, 위로받고자 하는 그들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들이 그 안에 빠져들게 한 것은 바로 우리인데 말입니다.

4인치짜리 작은 세상에 갇혀 신기루 같은 유토피아에서 우리의 청소년들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우리 어른들이, 학교가, 사회가, 궁극적으로는 국가가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문제와 이미 정해져 있는 정답을 청소년들에게 강요하고 미처 정답이 뭔지를 몰라서 뒤처지기라도 하면 다시 반열에 오르기 어려운 그 사회를 만들어 놓고서 우리는 청소년들의 미래를 걱정하곤 합니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규칙만을 쫓는 사회가 아니라, 그 규칙을 깨고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만들 능력을 키워주는 사회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틀려도 좋은 학교, 답을 잘하는 아이들이 아닌 질문이 넘쳐나는 학교와 그런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단, 그렇게 될 수 있는 바탕을 먼저 만드는 것은 그럴 위치에 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이신후<전북디지털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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