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단상
추석 단상
  • 박경철
  • 승인 2015.09.20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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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새로운 희망을 새로운 사랑을
 두손 모아 비는 가슴마다
 축복으로 응답하여 주시고

 일년동안 수고한 농부님 흘린 땀은
 황금물결 출렁이는 드넓은 벌판에
 황금알곡 추수하여
 감사가 넘쳐 나게 하시고

 고운단풍 손짓하는 아름다운 가을에
 시린 가슴 부여안고
 따뜻한 정 그리는 차가운 음지에
 사랑 꽃 만개하게 하셔서

 하늘에는 감사하고 땅에서는 나눔으로
 무지개 다리 넘나드는 기쁨으로 충만한
 풍성한 한가위 명절 되게 하소서

 ‘추석한가위’ - 전혜령 作

 가을이다. 오곡백과가 결실을 맺고 일 년 농사의 수고를 풍성한 수확으로 되돌려주는 고맙고도 감사한 계절. 썰렁했던 곳간마다 곡식들이 푼푼히 채워지고 여름 내 비바람을 견뎌낸 과일들은 곱고 야문 모양새로 수확의 손길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가을의 한복판에 민족의 대 명절 추석이 있다.

 그리 오래 전도 아닌 불과 몇 십 년 전, 그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오로지 땅에 기대어 농사로 먹고 살고 농사로 자식 가르치고 시집장가 보내며, 손주들 용돈까지 챙겨주던 그런 시절이었다.

 논 한마지기 밭 한 떼기만 있어도 추수가 끝나고 나면 배곯지 않고 그럭저럭 넉넉하고 두둑한 가을이었다. 하지만 도시화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우리네 세태도 많이 달라졌다.

 계절의 변화, 가을의 도래는 들녘이 아닌 동네 마트나 시장, 백화점 청과물 코너에서 먼저 감지된다. 자영업자나 샐러리맨들이 늘어나면서 가을은 수확, 결실의 의미보다 여행, 휴식의 계절로 더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도 추석은 변함없이 모두에게 풍요롭고 넉넉한 명절이다. 비록 지갑은 변함없이 얇고 통장 잔고는 봄이나 여름이나 별반 다르지 않지만 추석에는 먹고 나누고 베풀어도 아깝지가 않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지고 정서가 메말랐다고 하지만 대를 이어온 사람의 혼과 기질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 듯하다.

 추석의 기원이나 유래는 정확하진 않지만 고대로부터 있어 왔던 달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불이 없던 시절 어둠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날마다 환하게 떠오르는 태양은 당연한 존재로 여겼지만 한 달에 한번 크고 밝게 차오르는 보름달은 고맙고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 만월이 뜨는 날이 바로 축제의 날이었다.

 그 중에서도 일 년 중 가장 크고 밝은 달이 뜨는 음력 8월 15일이야말로 가장 큰 명절이었으리라. 이처럼 만월을 갈망하고 숭상하던 시대에 가장 밝은 달이 뜨는 한가위는 우리 민족 최대의 축제로 자리잡게 되었고 훗날 이런 풍습이 의식화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첨단 과학과 IT기술이 세상을 장악하고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현대인들도 여전히 추석 보름달이 뜨면 달을 보며 소원을 빈다. 달은 힘들 때 두서없이 내뱉는 넋두리를 진득하게 들어주는 오래된 친구와도 같은 존재다.

 올해부터 대체휴일제가 도입되면서 추석 연휴가 길어졌다. 서둘러 성묘를 치르고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고향을 방문하여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지들과 가까운 여행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행업계에서는 여름 피서철 만큼이나 추석 연휴를 여행 성수기로 보고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올 추석에도 변함없이 많은 귀향객들이 익산을 방문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운 어머니와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향은 언제와도 푸근하고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푼더분해진다. 해마다 찾는 고향이지만 올해 고향 익산을 찾는 귀향객들은 좀 더 우쭐해도 좋을 것 같다.

 올 7월 익산의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등 백제역사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익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도시로 위상이 격상됐다.

 대한민국 열두 번째 세계유산이고 전라북도에서는 고창 고인돌 유적에 이어 두 번째다. 세계유산은 한 나라의 문화수준과 문화 경쟁력을 가늠하는 척도다.

 세계 유산 등재를 계기로 익산 시민들의 자긍심은 물론 전라북도와 대한민국의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올 추석 그리운 고향과 조우한 후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익산의 세계 유산들을 둘러보시길 바란다.

 그곳에 가면 어린 시절 소풍가서 보물찾기하던 곳, 친구들과 술래잡기 하며 험하게 뛰어 놀던 곳이 아니라 전 세계가 보존해야 할 근엄하고 소중한 인류의 유산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박경철<익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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