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과 인문학
기업경영과 인문학
  • 홍용웅
  • 승인 2015.09.1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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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애플의 창의적인 IT제품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인류사적 발명이라 할 아이폰의 탄생 배경에 대한 촌철살인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학 이어령 박사도 기업의 패러다임이 ‘지식에 의한 생산’에서 ‘지혜에 터 잡은 경영’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가격이나 기능 중심의 산출물보다 편의와 재미를 위한 창조과정에 더 주목하라 충고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인문학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경영의 가치사슬은 상품기획-R&D-구매-생산-마케팅-AS로 형성되어 있지만, 이제 사이사이에 인문학적 요소가 끼어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의 임직원이나 소비자 모두 사람일 수밖에 없으므로 인간에 대한 통찰과 정확한 미래 예측역량 등을 겸전하지 못한 기업은 오래 존속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인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이공계 출신 CEO들이 경영일선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는 현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반대로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많은 벤처기업들이 인문적 경영역량의 부족으로 실패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인문학 본령이 인간과 세계, 우주 탐구에 있다면, 일정한 시공 속에 처한 기업이라는 존재 역시 인간과 세계, 나아가 우주로 확장되는 ‘부처님 손바닥’같은 사고체계의 범주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비근한 예로, 근세만 해도 경제학을 ‘정치경제학’이라 불렀는데, 이는 경제라는 것이 단순한 기술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인간생존과 밀접한 하나의 정치현상으로 여겨졌음을 시사한다. 오늘날 수리경제학자의 눈에는 다소 괴이한 일로 비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경제는 심리’라는 표현 역시 경제학의 근저에는 인간이 있다는 고백에 불과하다.

경영학 분야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경영학 교재는 무미건조한 기술적 이론으로 차고 넘친다. 표본실의 청개구리처럼 기업을 해부, 분해하여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현대 경영학의 그루(Guru : 스승)로 추앙되는 피터 드러커의 사람 중심의 경영학과 비교해보면 좀 지나친 느낌이다. 달을 보라 했더니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독일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드러커는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와 경영학의 대가로 변신했다. 아마도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그 추동력이 됐을 것이다. 그는 혁신의 중심축을 공급자로부터 수요자로 바꿔버린다. 고객(시장)이 수용하지 않는 기술진보는 아무리 화려해도 의미가 없다는 발견, 얼마나 통쾌한 인간 중심의 혁신이론인가?

과거 서울의 한 대학에서 일했던 필자는 대학 1년생들에게 진로탐색이니 직업선택이니 하는 교양필수 과목을 가르치는 걸 혐오한다. 장장 12년 동안 대학입학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위해 앞만 바라보고 뛰어온 이들에게 입학과 동시에 취업을 거론하다니, 아무리 청년취업의 팍팍한 현실을 고려해도, 너무 잔인하다. 적어도 1~2년 동안은 자신 속에 침잠하고, 세계와 우주를 성찰하면서 자기 인생의 좌표 찾기에 몰두할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 그들도 꿈꿀 자격이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미국 시카고 대학이 부럽다. ‘시카고 플랜(Chicago Plan)’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 학교는 학생들이 엄선된 100권의 고전을 통달해야 졸업이 가능하다고 한다. 1929년 허친슨이라는 괴짜 총장에 의해 시작된 이 모험은 결국 그때까지 형편없었던 3류 대학을 초일류로 변신시켰고, 90명에 가까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레이거니즘을 주도한 밀튼 프리드먼의 ‘시카고 경제학파’도 그 결실 가운데 하나다.

인문학이 이런 기적을 낳을 수 있다니 믿기 어렵겠지만,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기업인, 정치인, 관료 할 것 없이 사람 상대를 업으로 하는 자는 인문학을 공부할 일이다. 그저 멋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시대의 지엄한 명령이다.

홍용웅<전라북도경제통상진흥원장> 

약력 ▲경제학 박사 ▲소상공인진흥원장 ▲숭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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