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백하기 때문에 변호사가 필요하다
결백하기 때문에 변호사가 필요하다
  • 나영주
  • 승인 2015.09.1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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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장면이 있다. 경찰이 피의자를 체포할 때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로 시작하는 미란다 원칙의 고지 장면과 피의자가 경찰에 체포되어 ‘나는 내 변호사가 오기 전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특히 경찰이 주인공인 영화에서는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위와 같이 변호사 운운하면서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 관객 입장에서는 얄미움(?)이 느끼기 마련이다. 주인공 경찰이 결정적인 진술을 받아내기 직전에 말쑥한 슈트를 입고 범인을 데리고 나가 버리는 변호사는 범인보다 더 밉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관객처럼 현실에서 수사기관은 얄미움과 불편함을 종종 표출하곤 한다. 특히 피의자가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때 변호사와 동석을 원하는 경우, 마지못해 해주는 경우가 많다. 피의자가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때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형사소송법상 분명히 명시되어 있고 실제 조사에서 변호사가 피의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은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

심지어 수사기관에서 피의자에게 ‘왜 압수수색을 받자마자 수시간내에 변호사를 선임하였느냐’, ‘당신이 결백하다면 변호사가 필요 없지 않느냐’라는 비상식적인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을 무시하는 태도다. 변호사에게 조력을 받을 권리에 대하여 일찍이 헌법재판소는 헌법상 법치국가원리, 적법절차원칙에서 곧바로 피의자·피고인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도출하였고, 헌법 제12조 제4항은 이를 전제로 특히 신체구속을 당한 사람에 대하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규정이라고 판시하면서 변호사선임권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가장 기초적인 구성부분이며, 이는 구속 여부를 떠나 모든 피의자ㆍ피고인에게 인정되어야 함은 법치국가원리, 적법절차원칙에 비추어 당연하다고 보았다(헌재 2004.9.23 2000헌마138 판결 참조).

몇 년 전 현직 검사가 일간지에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칼럼을 기재했다가 결국 검사를 그만둔 일이 있다. 칼럼의 내용이 수사기법상 기밀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피의자에게 부여한 권리를 상술한 상식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된 것이다. 평생 검찰청, 경찰서를 갈 일이 없는 일반 국민이 어느 날 수사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으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아무런 준비 없이 가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우리 수사기관은 공정하게 판단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힐 충분한 능력과 의지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수사기관의 실수나 누군가의 치밀한 모함에 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면, 법률전문가의 조력은 필수다.

더구나 수사 과정에서 수사기관으로부터 별건 수사나 가족에 대한 확대 수사를 하겠다는 엄포를 받게 되면 피의자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심심치 않게 수사를 받는 도중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다. 새로 임명된 검찰총장들이 하나같이 ‘먼지 털기식 수사’를 근절하자고 일선 수사기관에 지시하는 이유도 현실적으로 그러한 경우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대검 중수부를 지휘했던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은 ‘수사 십계명’을 제시하면서, ‘칼은 찌르되 비틀지 마라’라고 하면서, 수사의 목적은 달성하되 공연히 불필요한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며 반복 소환과 인격 모독, 압박용 계좌추적, 회사 신용 실추용 압수수색 등의 예를 들었다. 그는 또 언론과는 ‘불가근 불가원’하라며, 언론을 이용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결론적으로 경찰서에서 출석하라는 전화를 받으면 무조건 법률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상대는 청룡언월도를 들고 있는데 맨손으로 간다면 필패다. 표도르(세계 최고의 격투선수)도 칼 든 사람과 싸우면 진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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