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의 영화와 두 가지 관점
두 편의 영화와 두 가지 관점
  • 이동희
  • 승인 2015.09.10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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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한국 영화가 강세다. 우리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아니 할리우드 영화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천만 관객이 몰렸다는 객관적 수치만으로도 이에 대한 증거가 될 만하다. 이렇게 한국영화에 관객이 몰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영화가 우리 정서에 맞는 측면도 있지만, 할리우드 영화에 뒤지지 않는 완성도와 작품성에 의미가 크다.

요즈음 한국 영화를 관람하는 일은 단순히 오락의 연장이요, 시간 죽이기의 한 수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뜻이 있다. ‘그 영화는 꼭 보아줘야 한다’는 영화팬들의 공감대는 영화가 오락 이전에 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문화상품으로 격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이런 시기에 필자도 두 편의 영화 <암살> <베테랑>을 며칠 사이에 관람하였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자 그동안 이런 영화들에 가해졌던 영화평이나, 심지어 일간지 등에서 이들 영화를 두고 펼치는 논조가 갈리는 묘한 현상의 이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암살>은 시작부터, 이 영화는 사실이 아니라 허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자막을 보여준다. 그런 친절함(?)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에피소드와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에서 사실성(事實性)을 넘어 사실성(史實性)을 느낄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오히려 ‘허구’라는 자막이 구차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영화를 관람하고 착잡한 심정으로 극장의 계단을 내려오는데 어느 젊은 관객의 욕설을 섞어 내뱉는 반응이 이 영화의 무게를 짐작하게 하였다. “독립운동을 하면 뭐해? 후손들은 거지로 사는데!” 마침 광복 70주년 기념일을 전후해 상영된 이 영화는 국가의 정체성을 논하기에 알맞은 소재가 될 만했다.

아직도 일제강점이 우리나라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고 버젓이 주장하는 일부 지식인(?)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잃은 나라를 되찾고 노예 상태의 겨레를 구하려고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목숨을 걸고 벌이는 독립운동을 고깝게 여기고도 남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놓고도 이렇게 상치된 주장을 펴는데, 영화 한 편을 놓고 벌이는 상반된 견해는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고도 남을 만한 울림을 준다.

<베테랑>은 ‘오락액션’ 영화다. 이 영화 역시 ‘사실이 아닌 허구’임을 밝히는 친절한(?) 자막이 뜬다. 그러나 영화의 에피소드들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기시감旣視感]으로 넘쳐난다. 그동안 간간이 알려졌거나, 재벌들의 과도한 ‘갑질행패’로 우리를 우울하게 했던 사건들이 영화에서 인물과 그룹의 이름만 바꾸어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는 관객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재벌그룹의 가족이거나 딴 나라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있다. 이 영화가 국민들에게 반재벌 정서를 불러일으켜 노동개혁의 걸림돌이 될 것을 염려하는 일간지의 논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국민의 정서가 천차만별이겠지만, 이렇게 한 편의 영화에 대한 감상마저 확연하게 어긋나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영화는 문제를 던져주는 데 충실할 뿐, 해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즉 영화는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의 세계라는 뜻이다. 영화를 관람하며 두어 시간 관객을 영화 속으로 몰입시키지만, 어둡던 영화관에 불이 켜지고 혼란스러운 도시의 거리에 나서면 영화의 판타지는 냉엄하고 가혹한 현실 앞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가 현실 문제를 호도하는데 기여할 뿐 어떤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영화어법 말고 어떤 방법으로 대중의 역사의식과 개혁의지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맞불을 놓을 수 있을까? 터키의 민중시인 오르한 웰리 카늑의 시 <조국을 위해>의 전문은 이렇다. “저 조국을 위해/ 우리들이 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우리들 가운데 누가 죽었는가/ 우리들 가운데 누가 앞서 선동하였는가” 우리는 영화로나마 이 엄숙한 질문 앞에 마주서야 한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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