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에 가야가 있었다구요?
전북에 가야가 있었다구요?
  • 권익산
  • 승인 2015.09.10 15:47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국시대에 전북은 어느 나라에 속해 있었을까? 정답은 당연히 백제다. 전북에서 백제 문화가 꽃을 피웠다는 것은 얼마 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백제역사유적지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전북이 백제 역사 700년 내내 백제의 영토였을까라고 질문을 바꾸어 보면 대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고대 국가인 백제, 고구려, 신라는 작은 나라에서 출발해 정복 활동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며 성장한 나라이다. 삼국 시대 이전의 한반도에는 삼한이라는 작은 나라들이 있었으니 백제는 이들 마한의 소국들을 정복하며 영토를 확장해 나갔고, 전북에 있던 소국들도 차례로 백제의 영토로 편입되어 가는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전북은 백제 땅이라는 생각은 백제의 전성기 어느 시점에 대한 이야기일 뿐 역사의 전 과정을 설명해 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역사란 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장구한 과정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전라북도라는 행정구역은 120년 전인 갑오개혁의 결과이며, 현재의 전라북도 영역이 완성된 것도 1960년대 이후의 일일 뿐이다. 게다가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지금도 전북의 지도는 바뀌어 가고 있다.

최근에 전북 동부 산악지대인 진안, 장수, 임실, 남원에서 가야 계통의 유물이 대거 발견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5세기 전반부터 6세기 전반까지 백년 이상 가야계통의 고분이 축조된 것으로 보아 대가야와 밀접한 관련을 맺은 가야연맹의 작은 나라들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 고분에서 5세기 중반 대가야 계통의 토기가 증가하기 시작하여 5세기 말이 되면 대가야 계통의 토기 일색으로 변하였다가 6세기 후반이 되면 백제 계통의 토기로 바뀐다. 이러한 토기의 변화는 이 지역의 정치 세력이 가야 계통에서 백제 계통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이 지역의 고분 가운데 남원 월산리 고분이 주목되는데 이 고분에서는 토기와 말 장식, 갑옷과 투구 등 가야계 유물이 대거 발견되어 무덤의 주인공이 가야연맹 소국의 지배자였음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중국산 청자와 자루달린 솥도 발견되었다. 청자는 중국 남조로부터 백제 중앙정부가 수입하여 지방의 세력가에게 하사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자루달린 솥은 백제와 신라의 왕급 무덤에서만 출토되어 강력한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으로 보고 있다. 이 두 유물이 이 지역에서 출토되었다는 것은 무덤의 주인공이 백제와도 관련이 있으며 아마도 이 시기 남원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백제가 무덤의 주인공에게 진귀한 선물을 주어 포섭하려 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할 것이다.

남원, 장수 지역은 섬진강을 통해 남해로 나가 일본과 중국으로 가는 해상 교통로를 확보하는데 중요한 곳이었다. 고려 말 진포대첩에서 패한 왜구가 일본으로 돌아갈 배를 타기 위해 최종 목적지로 삼은 것도 섬진강이었다. 이것을 파악한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기다려 몰살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섬진강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5세기 중반에는 대가야가 운봉고원을 넘어 진출하였고, 6세기를 전후하여서는 백제와 대가야 간에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강유역을 상실하고 웅진으로 천도한 백제에게 섬진강을 통한 교통로는 더욱 중요하였을 것이다. 이 때문에 백제는 전북 동부 산악지역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513년에는 장수, 임실, 남원 지역에 있던 가야연맹의 소국인 기문국을 멸망시키고 섬진강 교통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던 전북 동부에 존재하던 소국들은 5세기 이후 가야연맹의 세력권에 편입되었다가 6세기에는 백제에 의해 정복되어 백제의 영토로 편입되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중국, 왜와 교류하는데 섬진강이 교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단순하게 비교하면 전북 동부 산악지역의 사람들이 백제인으로 살았던 기간은 통일신라인으로 살았던 기간보다 짧으며 이 둘을 합친 기간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백제도 신라도 아닌 작은 나라의 백성으로 살았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상황에서 역사를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권익산 원광고 교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종아제 2015-10-17 00:05:22
멋지십니다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셔요
김종아제 2015-10-17 00:05:22
멋지십니다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셔요
김종아제 2015-10-17 00:05:22
멋지십니다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셔요
김종아제 2015-10-17 00:05:08
멋지십니다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