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리엄 해밀턴 쇼(1920~1950) -
국가보훈처는 William Hamilton Shaw(윌리엄 해밀턴 쇼) 미 해군 대위를 9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미국인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난 윌리엄 해밀턴 쇼는 자신을 한국인이라 생각했고 한국을 조국으로 여겼다. 평양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쳐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갖추었으며 한국인 친구들도 많았다. 미 해군에 입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상륙작전에도 참전했던 쇼 대위는 1947년 전역 후, 마음으로 늘 그리워하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미 군정청 소속으로 ‘조선 해양경비대사관학교(현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며 생도들을 가르쳤다.
그는 한국어와 한국지리에 정통했기 때문에 맥아더 장군의 최측근 보좌관인 해군정보장교로 임명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또 작전 완수후에는 다시 자원해 미 해병대 5연대에 배속돼 서울탈환작전에 직접 참전했다.
1950년 9월 22일 아침 쇼 대위는 적 후방 정찰의 위해 녹번리(현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접근했고, 이때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적 매복조의 공격을 받아 28세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했다. 유엔군은 그가 전사하고 일주일 후 서울 탈환에 성공했다.
전사하기 일주일 전 인천상륙작전에 함께 참전했던 그는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입니다. 내 조국에서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공부만 하겠습니까? 공부는 내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해밀턴 쇼 대위는 우리 정부로부터 충무무공훈장을, 미국 정부로부터는 은성무공훈장을 각각 추서받았다.
〈전주보훈지청 제공, 문의 ☏063-239-4500〉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