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서 시작되는 배려
‘나’에서 시작되는 배려
  • 강현직
  • 승인 2015.09.0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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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壯子)의 대종사(大宗師)편에 나오는 상유이말(相濡以沫)이란 구절이 있다. 장자가 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난 연못을 보고 물고기들도 내일이면 모두 죽겠구나 걱정을 하며 다음 날 연못에 다시 가보니 죽으리라 생각했던 물고기들이 연못 한구석에 모여 거품으로 서로 몸을 적시며 죽지 않고 모두 살아있었다는 것으로 서로 의지하며 도울 때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상유이말(相濡以沫)은 지난해 7월 시진핑 중국 주석이 방한해 서울대에서 “역사적으로 양국 국민은 어려울 때마다 서로를 도왔다”고 말하며 인용해 회자됐던 말로 지난 중국 지안 한국 공무원 버스추락 사고에서 중국 정부가 상유이말 문구를 써가며 한국의 입장을 많이 배려했다고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사려 깊게 챙기는 것은 우리 사회의 오래된 미풍이기도 하다. 전라선을 타고 남녘으로 내려가다 보면 구례에 조선 영조때 낙안군수였던 류이주 선생이 지은 운조루(雲鳥樓)가 있다. 7년 공사를 거쳐 완성했다 하니 그 규모도 웅장하지만, 뒤 켠 곳간의 쌀뒤주로 더 유명하다. 쌀 두가마니반이 들어가는 그 뒤주에는 아랫부분에 조그만 직사각형의 구멍을 있으며 여닫이 마개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누구든 마음대로 뒤주의 마개를 열수 있다’는 말로 쌀이 필요한 자는 누구나 가져가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이웃의 배고픔과 아픔까지 보듬는 배려의 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요즈음에도 베풀고 나누고 서로 위하는 모습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부인의 친구를 위해 간을 이식해준 경찰관, 생면부지의 신장병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한 요양보호사, 거액이 든 지갑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준 여고생, 치매 할머니에게 자신의 옷과 신을 신기고 가족을 찾아 준 여성 경찰관, 협력사 자녀들까지 챙기는 대기업 대표 등 아직도 우리 주변은 훈훈함이 있다.

반면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소식들도 많다. 빨리 출발하라는 경적에 놀란 한 주부의 교차로 신호등 울렁증, 방화와 살인까지 이어진 아파트 중간 소음 문제 또 이웃과의 주차문제, 보복 운전, 주차단속에 불만을 품고 파출소를 부수는 등 서로 공감하지 못한 채 분노가 폭발해 버리는 사회적 갈등이 도를 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갈등지수 국제 비교 및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지수는 1.043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국 가운데 터키, 그리스, 칠레, 이탈리아에 이어 5위로 나타났다.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연간 246조원에 이르며 이는 1인당 국내총생산 27%를 갈등 해소 비용으로 지불하는 셈이 된다.

전문가들은 사회 갈등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려문화 확산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배려란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사랑과 관심을 갖고 잘 관찰하여 보살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진정한 배려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배려하는 것’에서 시작되며 바른 생각을 타인과 나눌수록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해소되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채울 수 있다. 즉 자기 배려가 있어야 타인도 배려할 수 있으며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자신을 위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도 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타인에 대한 배려란 필요한 일을 공정하게 분담하고자 하는 마음, 불화를 없애는 방법들에 기꺼이 따르려는 마음’이라며 이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파스칼도 “자기에게 이로울 때만 친절하고 어질게 대하지 마라, 지혜로운 사람은 이해관계를 떠나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어진 마음으로 대한다. 왜냐하면, 어진 마음 자체가 나에게 따스한 체온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배려 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 그것이 큰 권력이든 작은 힘이든 모두를 내려놓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을 보고 오늘의 현상을 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남의 잘못을 찾아 우월한 지위로 제압하는 것, 승자 독식의 사회 질서, 상대적 양극화 심화로부터 오는 불안감 등은 그 진정성 여부를 떠나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강현직<전북발전연구원장> 

약력 ▲아시아경제 편집국장 ▲헌법재판소 소장비서관 ▲협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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