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상인인가?
변호사가 상인인가?
  • 유길종
  • 승인 2015.08.3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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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하자면, 변호사는 상인이 아니고 상인이 되어서도 안 된다. 동서를 막론하고 변호사가 상인으로 취급된 예는 없었다. 전통적으로 변호사는 성직자, 의사와 함께 전문직업인으로 분류되어 왔다. 성직자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의사는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는 일을, 변호사는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는 일을 각 담당함으로써, 세 직업 모두 치유와 회복을 목적으로 삼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변호사직은 명예롭고 고상한 직업으로 여겨져 왔고, 전문성과 권위도 인정받아 왔다.

전통적인 인식 차원의 문제를 떠나 법이나 제도적으로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변호사를 단순한 상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변호사법 제2조는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직으로서 독립하여 자유롭게 그 직무를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역시 변호사를 상인으로 보지 않는다(대법원 2007. 7. 26. 자 2006마334 결정). 논란이 되고 있는 형사사건 성공보수 무효 판결도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과 윤리성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독일은 변호사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나라이다. 독일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독립한 사법기관이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2조 제2항은 변호사의 활동은 영업이 아니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판례 역시 변호사 직업은 진실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부여되어 있는 공무원과 유사한 지위에 있다고 본다. 변호사의 성공보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변호사 보수의 하한을 법률로 정하는 것도 변호사 직업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일본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은 우리 변호사법 제1조와 동일하게 변호사의 사명을 규정하여 공익적 지위를 밝히고 있다. 변호사, 의사 등의 자유전문직은 실제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더라도 영업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에 반하여 미국은 변호사의 상인성을 강하게 인정하는 나라이다. 원래 미국은 학설과 판례 모두 전통적으로 변호사는 상인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여 오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변호사의 업무 형태가 로펌을 중심으로 기업화되면서 변호사라는 직역이 상업에 속하는지 혹은 자유전문직(profession)에 속하는지 여부가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고,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7년경 “변호사의 업무가 상거래보다 고차원적이라는 믿음은 시대착오적이고 위선적이다”라는 판결까지 내놓았다(Bates v. State Bar of Arizona 사건). 무엇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미국은 세계적으로 변호사에 대한 인식이 제일 좋지 않은 나라에 속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나 법제도의 차원에서 보면 변호사는 상인이 아니고 상인처럼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변호사들이 직무의 공공성을 망각하고 상인처럼 행동한 사례가 과거에도 많이 있었고, 앞으로도 많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된다. 사법불신의 주범으로 비난받아온 전관예우도 실상은 변호사가 상인처럼 행동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전관임을 내세워 사건의 난이도나 변호사의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 고액의 수임료를 받아 챙기는 것은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을 져버린 행위이고 상인처럼 행동한 것임이 분명하다. 전관을 내세운 것은 아니라도 담당 검사나 법관과의 개인적인 친분 관계를 내세워 사건을 수임하고 궁박한 상태에 있는 의뢰인으로부터 고액을 받아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에는 변호사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경영이 어려워진 변호사들이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 변호사의 명예나 권위,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부당한 영리를 추구하거나 탈법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비난이 들린다.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변호사의 대량배출로 인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변호사들도 일정 부분 미국식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변호사들이 영리만을 생각하고 직무의 공공성을 져버린다면, 결국 우리나라 변호사들은 미국의 변호사들처럼 국민들로부터 최악의 평가와 인식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유길종<법무법인 대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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