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와 의사출신 보건복지부 장관
메르스 사태와 의사출신 보건복지부 장관
  • 김형준
  • 승인 2015.08.23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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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대응 실패로 국민들과 사회 전반에 엄청난 문제를 몰고 왔던 메르스 사태가 일단락된 듯하다. 얼마전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전격 경질되고 17년 만에 의사출신 서울대의대 정진엽교수가 임명되어 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사실 경제연구소 출신인 문형표 전 장관을 두고 방역체계와 보건의료을 책임지는 수장으로 적합한가는 임명 초기부터 논쟁이 있었고 예기치 못한 메르스 사태를 맞이하면서 보건당국의 계속된 실책과 무능으로 결국 문장관은 불명예 퇴진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지명된 의사출신 정진엽 장관 내정자에 대해서는 복지분야에 대한 비중이 지나치게 커진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 분야정책을 개선하고 이번 메르스 사태와 같은 실수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능력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한편,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메르스 사태를 교훈 삼아 사스, 신종플루 등 향후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처럼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될 전염병 관리 체계를 정비하고 고령화 사회에 따른 새롭고 다양한 질병관리에 대한 보건의료의 정책 요구를 보건복지부가 실행해 주기를 주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제2의 메르스사태를 막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와 각계에서 제기한 문제점, 전문학회·협회·시민사회단체 등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해 ‘의료관련 감염 방지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 대책에는 문제를 키운 원인중에 하나인 대형 종합병원 쏠림현상같은 잘못된 의료전달체계 개편 ▲감염관리 전문인력 및 관리인프라 확충 ▲의료기관 시설 및 다인실 개편 ▲병원문화 및 진료환경 개선 ▲응급실 감염방지 및 대형병원 응급실 과밀화 해소 등의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주문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의사출신 보건복지부 장관의 임명은 메르스 사태 당시 보건복지부내 장·차관 중에 보건의료 전문가가 한명도 없었다는 점에서 일정정도 수긍이 가는 인사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정진엽 장관 내정자를 두고 의료계 일각에서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 내정자는 33년간 의료계에 종사하며 소아뇌성마비 치료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정형외과의사 출신이다. 또한, 분당서울대병원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분당서울대병원장을 3차례나 연임하는 등 뛰어난 경영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왔다. 이런 경력과 능력은 분명하나 메르스 사태 이후 대형병원 중심의 의료전달체계와 과밀화 해소를 위해 정책을 추진하기에는, 정 내정자가 그동안 철저히 소위 ‘빅 5’라 불리는 서울대병원, 삼성병원 같은 대형 병원의 이익을 대변해온 전력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그 의문의 근원지가 되고 있다. 특히 정 내정자가 대다수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가 반대하는 현 정부의 ‘원격의료정책’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이며, 스스로 원격의료 관련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원격의료가 도입될 경우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점, 산업창의융합포럼 글로벌 헬스케어분과위원장을 맡아 의료 영리화를 위한 의료규제완화론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온 인물이라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4일 정 내정자의 발표 이후 바쁘게 돌아가는 정부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담화에서 의료계와 시민단체 등이 의료영리화의 단초라며 반대하고 있는 ‘국제의료지원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통과를 국회에 강력히 요구했다. 이어 12일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는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이 두 법안의 조속한 제정 추진 의지를 못박은데 이어 일자리와 경제적 부를 창출하겠다며, 원격의료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근혜 정부가 메르스 사태의 수습과 재발방지보다는 의료영리화 및 원격의료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기 위한 노림수로 의사 출신을 장관으로 내세운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의료계는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우려해 원격의료에 반대해 지난해 3월 집단휴진까지 불사했다. 또한 올해는 예기치 않은 메르스 사태로 인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떠안은 상황이다. 이번 의사출신 장관의 임명이 같은 의사 출신을 앞세워 원격의료에 대한 의료계의 반대를 무마하려는 꼼수가 아닌가하는 의구심과 또다시 의·정간에 갈등이 커지게 되어 결국 국민들에게 큰 피해가 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건 지나친 기우일까? 오늘부터 정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시작될 예정이다. 내정 후 현재까지 극도로 말을 아끼는 장관 내정자가 이번 청문회에서는 의료영리화 및 원격의료에 대한 본인의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정당한 국민의평가를 받기를 바란다.

김형준<신세계병원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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