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영 센트럴병원 이사장 인터뷰
성대영 센트럴병원 이사장 인터뷰
  • 청와대=소인섭 기자
  • 승인 2015.08.1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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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군 동향면 출신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

 성대영 센트럴병원 이사장은 최근 큰 고초를 겪었다.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중동호흡기질환(메르스) 파동 때문이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고도 아쉽기만 하다. 지난 6월 6일 응급실에는 열을 호소하는 환자가 내원했다. 응급 의료진은 메르스 감염을 의심하고 적절하게 조처한 뒤 보건소로 이송조치했다. 이후 환자는 확진 판정을 받았고 치료후 퇴원했다.

  문제는 센트럴병원에 메르스 확진환자가 입원해 있다는 루머에 휩싸인 것이다. 메르스 초기 병원이름이 노출되면서 내원·입원환자가 급격히 줄어 큰 피해를 봤다. 늦은 감이 있지만 김윤식 시흥시장은 병원을 방문, 직접 진료를 받고 “메르스 감염 의심인을 신속하고 적절하게 조처하고 보건소로 이송해 환자의 악화를 막고 병원은 물론 시흥지역 추가 감염 가능성을 차단해 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진화에 나섰다. 정치인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시흥시 확진자는 1명에 그쳤다. 성 이사장은 “그때 일로 11억 원을 손해 봤다”면서도 “당시 의심환자 처리가 미숙했더라면 공업단지 특성상 일파만파로 확산해 큰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고 통근 안도감을 표시했다.

센트럴병원은 400병상 규모의 시흥 최대규모의 종합병원이다. 이를 이끄는 성대영(56·실제 58세) 이사장. 전북 진안군 동향면서 태어나 안천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교를 서울로 진학했다. 그에게는 어린시절의 찢어지는 가난을 극복한 상경·성공신화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창업하거나 인수한 회사마다 어려움을 안겨 지독한 자금난을 겪어야만 했다. 지금은 두 개의 의료법인과 제약회사(위더스)를 거느린 경영인으로 우뚝 섰다.

의약품 유통회사를 하면서, 또 병원과 제약회사를 인수한 뒤 극심한 돈 가뭄을 겪은 성 이사장에게는 위기극복 능력이 있었다. 유통회사(한빛약품)를 운영할 땐 익산의 한 병원에 돈을 떼였다. 당시는 IMF때. 그러나 대형 거래처의 도움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2002년에는 지금의 제약회사(위더스)를 인수했지만 위기에 봉착했다. 5년간 국세와 이자는 물론 밀린 임금까지 부채로 남아 있었다. 의약분업 논쟁이 한창이던 당시 대체 조제가 화두가 됐다. 성 이사장(위더스 대표)은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은 오리지널약과 복제약이 체내에서 약물 농도 변화가 비슷하게 나타나는지를 보는 임상시험인데, 국내 최초로 성공해 위·수탁 생산이 늘어 위기를 극복했다”고 소개했다. 쉽지 않았던 센트럴 병원도 가족 종합검진 이벤트와 신종플루 지정병원이 살렸다. 대구지역 병원 인수로 인한 위기는 요양병원으로 전환, 넘을 수 있었다.

센트럴병원은 2013년에 이어 2014년 보건복지부 주관 273개 전국 지역응급의료기관 평가에서 전국 1위를 할 정도로 성장했다. 병원과 제약회사 등 직원만 해도 1천여 명에 이른다.

성 이사장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씨름등재추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약 중이다. 민속씨름 협찬과 씨름선수 출신을 고용해 성공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는 “운동선수 출신은 포기할 줄 모르고 생각도 건전하다”고 귀띔했다.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한 성 이사장에게 고향을 어떤 곳일까. “마음의 안식처다”고 고향을 말하는 성 이사장의 얼굴에 꽃이 피어 오른다. 모친이 생전에 계실 때만 해도 자주 내려가 위안을 받곤 했단다. 그러나 고향에 사업장을 마련하고 싶어도 아쉬운 게 많다고 한다. 생산성은 노동력을 담보로 하는데 지속적으로 공급받기 어려울 만큼 노동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회사 직원을 대상으로 국내 MBA 과정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인재양성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지역인재와 관련, 성 이사장은 “그동안 고향사람과 접촉이 적었고 지역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변 사업가를 통해 고향과 윈-윈하는 것을 본다”고 지역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앞만 보고 살아왔다”는 그가 병원과 제약회사를 운영하며 ‘지역’과 상관성을 찾은 것이다. 그는 “고향에서 지속적으로 유치(초청 또는 협력)하는 사람이 없지만 지켜보고 있다”고 애정과 관심을 에둘러서 말했다. 고향과 후배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 나갈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그는 부인 이운숙 씨 사이에 아들 둘을 뒀다.

서울=소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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