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뿌리내린 일제 잔재 제거가 급해
생활 속 뿌리내린 일제 잔재 제거가 급해
  • 송영준
  • 승인 2015.08.18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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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8·15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이다. 광복은 글자 그대로는 빛을 다시 찾았다는 의미로 36년간 일제에 빼앗겼던 나라와 주권을 회복한 날로 올해에는 임시공휴일까지 정해졌으니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광복은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다. 일제의 탄압에 맞서 목숨까지 바친 수많은 백성들의 저항과 애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외형상으로 광복은 이루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침략역사 사죄와 독도영유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 왜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일제잔재는 여전하지만, 어느덧 무감각해져 버린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일본식 표현을 눈만 돌리면 찾을 수 있으니 우리부터 생활 속에 남아있는 일본잔재를 말끔히 털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를 무대로 한 조정래의 장편소설 ‘아리랑’에는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병탄하고 실시한 토지조사사업 당시 수탈과 고통의 현장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 만들어진 지적도와 토지대장 등 지적공부를 사용해 왔지만 2012년부터 지적재조사사업을 실시하고 있어 지적분야에선 일제 잔재청산이 머지않아 이루어질 전망이다.

한편,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하면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미명하에 창지개명(創地改名)을 했다. 이 과정에서 원래 왕(王)이었던 것을 왕(旺)이나 황(皇)으로 변경했다. 왕은 임금 또는 군주를 의미하지만, 황은 일본의 천황을 일컬으며, 왕(旺)은 일(日)에 왕(王)을 더한 것으로 일본 왕을 상징한다. 위와 같이 지명을 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한자나 일본식으로 많이 바꿨고 일부는 아직까지도 곳곳에서 쓰이고 있다. 장수군 용계(龍鷄)마을은 고려 말 장군이었던 이성계가 잠이 들었다가 닭 울음소리에 깨어나 왜적을 무찌른 곳이어서 지명이 닭계자를 사용했었는데 유래도 없는 계곡을 뜻하는 용계(龍溪)마을로 사용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또한 서수(瑞穗)는 풍성한 이삭을 뜻하는 일본어 미즈호를 우리말로 음역한 것이고, 동산(東山)은 히가시야마, 팔목촌(八木村)은 야기무라, 중야(中野)는 나까노, 전중(田中)은 타나까 등으로 대부분이 일본인 농장주 또는 측량사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니 남아있는 일본식 지명으로부터의 광복이 필요하다.

무모하고 저돌적인 행위를 비유하는 무댓포, 상의를 우와기, 계단을 가이당으로 말하는 등 일본어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단어를 일상적으로 흔히 쓰면서도 일본어 잔재라는 생각을 못 하고 너무 익숙해서 속어인 줄 알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전문 용어에도 일본어가 많이 남아 있다. 필자가 종사하고 있는 지적측량분야에서는 아직도 건물의 바닥을 나타내는 기초(基礎)를 일본식 발음인 기소라고 하고 길을 나타내는 가도를 일본식 발음 카이도우에 따온 카도, 측량연필 갈던 사포를 야스리, 측량용지를 측량판에 고정할 때 사용하는 집게를 하사미, 경계표지를 땅에 밖을 때 사용하는 망치를 오함마 등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한글사용이 시급한 실정이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수많은 위인과 영웅의 전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나라의 동네이름은 방앗간 앞 개천에 다리가 있다고 해서‘방아다리’, 효자가 많이 나온‘효자골’, 요즘은 박사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해서 붙인‘박사마을’ 등 자연스럽고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고 전래하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마을마다 독특한 생활방식과 문화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래서 지명은 우리의 정신이자 삶이 반영된 역사라고 할 수 있고 한번 이름이 정해지면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정도로 영속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지명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고 광복을 맞이한 지 70년이 지났지만, 언어 사용에 있어서 광복은 아직 오지 않은 셈이다. 언어란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만이 아니고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고의로 왜곡했거나 행정구역 개편 시 일본식으로 만들어진 명칭과 지명을 바로잡아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린 일제 잔재를 제거하고 민족 고유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회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송영준<한국국토정보공사 전북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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