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쌀 수탈의 전진기지 군산
일제 강점기 쌀 수탈의 전진기지 군산
  • 박진원 기자
  • 승인 2015.08.11 1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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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기획] 쌀 수탈의 아픔 딛고, 미래농정 편다<상>

광복 70주년 군산시 개정면 일제시대 전국 최고의 일본인 농장주 구마모토 가옥 앞에서 이진원 군산문화원장이 일제 수탈의 아픔을 설명하고 있다. <신상기 기자>

 (上) 일제 강점기 전북 쌀 수탈 전진기지를 가다.

 오늘날 군산항은 전북의 수출 전진기지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는 전북의 농민을 울린 쌀 수탈 전진기지였다. 오늘날 근대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건물 곳곳에 일제의 무자비한 수탈에 배를 움켜쥐고 노동력을 착취당한 전북의 한이 서려 있다. 광복된 지 70년이 지난 오늘날, 군산 대야 들녘 등 광활하게 펼쳐진 전북의 들판에는 일제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채 미래 농정의 씨앗이 뿌려진 희망의 땅으로 새로운 광복 70주년을 맞고 있다.  이에 본보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유년시절 쌀 수탈현장을 보며 자란 이진원(80) 군산문화원장의 도움을 받아 일제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군산 임피 일대를 취재,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1899년 5월 1일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군산항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개항하면서 쌀 수탈의 비극도 시작한다.

 군산항은 개항 당시 지금의 군산의료원 뒤쪽에서 세관을 중심으로 한 넓지 않은 어촌이었다. 1910년 8월 한일합병이 이루어지자 조선총독부의 설치로 ‘군산이사청’은 폐지되고 군산은 부로 승격, ‘군산부청’이 들어섰다. 1908년 전국 최초로 전주-군산간 포장도로가 익산-군산간의 철도가 개설되면서 호남 최대의 상업도시로 성장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일제의 쌀 수탈이 자리하고 있다.

 1926년 말 30정보 이상의 규모를 가진 일본인 농장 수는 전북이 가장 많았다. 그만큼 많은 수탈을 당했다. 1935년 군산에서는 주민의 60% 이상이 보리가 아직 여물기도 전에 곡식이 떨어지는 춘궁 농가였다. 굶어 죽는 사람이 514명에 달했다. 1916년 53%였던 소작농가는 1930년 87%에 달하는 등 가난한 농부들은 굶주림에 조상 대대로 내려온 토지를 일본인에게 넘겼다. 1933년 일본인 소유 농장과 가혹한 공출(세금)로 209만 섬의 쌀이 군산항을 통해 빠져나갔다.

▲ 군산 임피역은 1912년 군산선의 간이역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해가기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된 역사지다. <신상기 기자>

 일제 강점기 익산-군산간 철도를 따라가다 보면 군산 임피역사(驛舍)가 서 있다. 임피역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수탈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임피역은 군산 임피 서수 지역에서 운반된 미곡을 군산항으로 반출하기 위한 수탈의 거점 역할을 했다. 일제의 수탈에 배를 움켜쥔 농민이 쌀 대신 깻묵으로 끼니를 때우고, 노동자들이 쌀가마니를 기차에 실어나르던 비극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군산시 개정동 개정병원 안에는 일제강점기 전국에서 가장 큰 농장을 소유한 구마모토 리헤이의 농장(이영춘 가옥)이 있다. 구마모토 농장은 논만 3,500정보로 여의도 면적의 10배가 넘는 대규모 토지를 소유했다.

 군산문화원 이진원 원장(1935년생)은 당시 수탈의 역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 원장은 임피역 바로 앞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 원장이 살던 하전마을에서 일본인을 마주하고 살았다. 초등학교 2학년에 해방을 맞은 이 원장은 “당시 수탈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임피역 앞에 산처럼 쌓여 있던 쌀가마니에서 숨바꼭질을 하면서 뛰놀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당시는 쌀가마니가 군산으로 간다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원장은 “당시 농토를 잃은 이웃 농민의 친구들은 밥 굶는 것이 일상생활처럼 되어 있었다”며 “부유한 편에 속했던 자신의 집도 일제가 콩기름을 짜고 남은 콩깻묵을 지급받아 아버지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을 망치로 깨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 나이에도 일본인에는 순종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며 “이영춘 가옥, 임피역을 볼 때면 일제 수탈의 역사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고 회상했다.

박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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