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하세
괴로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하세
  • 나영주
  • 승인 2015.08.09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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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다. 최근 SNS에서 젊은 세대가 즐겨 쓰는 말이다. 풀어 쓰자면 지옥을 뜻하는 ‘헬(hell)’과 구한말 무기력했던 ‘조선’이라는 단어가 합성된 조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을 혐오하는 단어다. 세계에 유래 없는 짧은 시기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국가에서 왜 이런 단어가 그것도 미래세대라고 할 수 있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횡행하는 것일까. 한편에서는 영화 <국제시장>이나 <연평해전>에 열광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헬조선에서 탈출하는, 이른바 ‘탈조선’의 방법을 묻는 글들이 인터넷에 넘치는 것일까.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자국혐오증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우선 젊은 세대 사이에서 팽배해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로 대표되는 기성세대들, 이른바 ‘국제시장 세대’와 ‘586세대’는 애국심과 자부심은 있어도 자국혐오증은 없다. 다음으로 정부를 불신한다.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에 대하여 비판적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화가 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실력행사나 정치 참여에는 미온적이다. 이유는 열패감 때문이다. 사실 제도적 정치 참여의 대표적인 예인 투표의 경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대갈등의 양상으로 결과가 나오곤 했는데 이명박 정부 이래로 젊은 세대가 번번히 기성세대에게 밀리면서 보수정권이 장기 집권하게 되었고 결국 투표에서의 패배는 젊은 층에게 열패감을 선사했다. 집회나 시위는 어떤가. 젊은 세대는 과거 세대처럼 ‘꽃병’을 들고 거리를 나선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자국혐오증은 세대갈등의 양상으로 비화된다. 헬조선을 외치는 젊은 세대들은 8,90년대 학번이 대학 시절에는 놀면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도 졸업을 하고 나서는 낮은 스펙으로도 대기업을 골라 갔고, 각종 고시나 공무원 시험도 간단히 합격할 수 있었으며, 내 집 마련과 결혼도 쉽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젊은이 1명이 수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사회적 구조의 변화, 나아가 부동산 폭등과 청년 실업의 문제는 기성세대의 잘못이 크다고 여기면서 기성세대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힐링에 조소를 보낸다. 흔히 젊은세대는 SNS상에서 ‘노오력이 부족하다 이노옴!!’이라는 댓글로 기성세대의 힐링을 비꼰다.  

 이러한 자국혐오증은 충분히 징후적이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의문, 애국과 안보를 외치는 자들의 병역기피와 방산비리, 사법부와 검찰, 국정원과 같은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 IMF 조차도 개념을 폐기해 버린 낙수효과에 대한 비판,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 자영업의 몰락과 만연된 청년 실업, 이른바 ‘오포세대’의 경제적?정치적 열패감 등이 뒤섞여 이와 같은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헬조선 현상은 분명 병폐다. 자본주의가 고도화 되고 성장동력이 떨어져 가는 구조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나머지 모든 원인을 세대 갈등으로 몰아간다. 또한 문제에 대한 해결이 정부에 대한 분노에서, 사회적 약자 예컨대 노인, 여성, 장애인, 성적소수자에게 전이된다는 점은 우려할만 하다. 하지만 헬조선 현상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없이 단순히 젊은 세대의 푸념이나 엄살로 몰아가는 것은 어리석다. 압축 성장에 따른 세대별 정치적 감수성과 계급갈등이 세대갈등으로 전이된 사회적 구조를 간과한 기성세대들의 ‘힐링’이나 ‘질책’은 반발만 불러온다.  

 광복 70주년 행사로 나라가 떠들썩한 분위기다. 경제인 사면도 입에 오르내린다. 이번 달 14일은 임시공휴일로 제정되었다. 바야흐로 관제 애국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한편에서는 애국을 공동체에 대한 헌신으로 보지만, 헬조선을 외치는 이들은 주인님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노예들의 이데올로기라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애국가를 인용하면서 애국하는 마음을 강조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애국가 4절을 모두 부르지 못하는 검사들에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고 호통을 쳤다. 그런데 SNS에서 젊은 세대는 애국가를 이렇게 바꿔 부른다. ‘괴로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하세’

 나영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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