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공존을 위하여
인류 공존을 위하여
  • 권익산
  • 승인 2015.08.0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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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영화 암살이 인기다. 벌써 800만명이 영화를 관람했다고 하니 천만 명을 넘기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영화의 내용이 비록 사실은 아니지만 십여년 전 의열단을 소재로 한 영화 아나키스트 이후 아나키스트 독립운동을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크게 민족주의계와 사회주의계로 나누고 있지만 이들과 다른 아타키스트들도 잊지 말아야할 소중한 분들이다.

일제의 억압과 압제를 거부한 아나키스트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뿐 아니라 해방된 이후 민족 내부의 압제도 거부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일제는 가장 먼저 제거해야할 압제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의열단을 이끈 김원봉 외에도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일제의 압제에 맞서 싸웠다. 그 중에는 전북 정읍 출신 백정기 의사가 있다. 윤봉길, 이봉창의사와 함께 일제에 맞서 의열 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삼의사 가운데 한사람이지만 두 분만큼 알려져 있지 않다.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정읍에서 자란 백정기 의사는 24살 때 3.1운동을 경험하고 그해 인천의 일본인 시설을 파괴하려던 계획을 세웠으나 발각되자 중국으로 도피하였다. 다음해 독립운동을 위해 서울에 돌아왔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히게 되지만 광부로 위장하여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중국으로 망명하여 이회영, 신채호 등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을 모색하다 일본 수력발전소 파괴와 일왕 암살을 도모하던 중 관동대지진으로 계획을 접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에 참여하는 한편 상하이에서 철공소 노동자로 일하며 폭탄 제조기술을 익히기도 했고, 1925년 상하이 총파업 당시 노동운동에도 참여하여 파업을 노동자들을 이끌었다.

그는 압제가 없는 사회를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중국의 후난성과 푸젠성의 농촌에서 무정부주의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1928년에는 아시아 각국의 무정부주의자들과 함께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을 조직하고 한국대표로 참여하였으며, 기관지 동방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 후 1930년에는 북만주로 가서 김좌진과 함께 한족총연합회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으며,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침략하자 흑색공포단을 만들어 텐진에 입항하는 일본군 수송선에 폭탄을 던지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상하이로 돌아와서는 윤봉길의사와 별도로 홍커우 공원 의거를 준비했으나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가 육삼정이라는 음식점에 일본수뇌부와 친일 중국 관료들이 모인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의거를 준비하였다. 일본수뇌부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일거에 몰살하려는 계획을 실행하던 중 일본인 밀정의 밀고로 거사는 실패하고 백의사와 원심창, 이강훈은 붙잡혀 나가사키 형무소로 끌려갔다. 이 후 백의사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나가사키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중 일년 만에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백정기 의사는 3.1운동 이후 순국할 때까지 15년간 한시도 한가로울 틈 없이 독립운동에 매진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광복절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70년이라 임시 공휴일도 정하고 정부에서도 떠들썩하게 여러 행사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당시 조선인들이 모두 백정기 의사처럼 목숨을 바쳐 일제에 맞서지는 못했지만 윤봉길 의사의 성공 소식에는 통쾌해 했고, 백정기 의사의 실패 소식에는 탄식을 하며 안타까와 했다.

당시에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제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고, 소수이지만 자신의 부를 늘리거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제에 협력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독립운동가 앞에서는 자신의 행위를 부끄러워 할 줄은 알았다. 최소한 친일의 대가로 얻은 부를 이용해 교육사업이나 사회사업을 한 것을 무슨 대단한 독립운동을 한 것처럼 자랑하는 염치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백정기 의사가 꿈꾸었던 해방된 조국은 거사에 나서기 전 밝힌 것처럼 첫째는 강도 일제로부터 주권과 독립을 쟁취함이요, 둘째는 전 세계 독재자를 타도하여 자유 평화 위에 인류 공존을 이룩함이었다.

백정기 의사가 다시 살아온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실까? 광복 70주년에 다시 한번 백정기 의사의 살아온 길을 생각해 본다.

 권익산 원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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