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주의 유령의 변주곡
애국주의 유령의 변주곡
  • 권영후
  • 승인 2015.07.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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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문래공원은 집에서 가까워 자주 가는 곳이다. 공원을 걸으며 공간의 역사적 기제에 대해 가끔 생각하곤 했지만, 국정원 해킹 의혹사건이 공개된 후에 들러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문래공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경멸을 불러 일으키는 정치적 논쟁 장소 중 한 곳이다. 자의적 애국주의로 무장한 보수세력에게는 성지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반박정희세력은 박정희의 역사적 흔적을 지울 것을 주장한다.

 문래공원에는 육군 제6관구사령부가 있었다. 박정희 소장이 5·16쿠데타 당시 참모들과 작전회의를 하던 지하벙커와 1966년에 설치된 ‘박정희 흉상’이 남아있다. 흉상은 2000년 11월 5일 ‘박정희의 과오를 잊지말자’는 반대세력에 의해 철거를 당하고 이틀이 지나 제자리로 돌아왔다. 흉상을 보호하기 위한 펜스에는 ‘흉상을 훼손하거나 주위시설물을 손괴하는 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엄중 조치함’이라는 경고판이 걸려 있다.

 애국주의는 국가와 정권의 일치여부에 대한 법률적 논란을 떠나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애국의 관점과 지향하는 방향은 정파, 진영, 세대, 개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애국주의는 곧잘 주관적 판단을 객관으로 포장하여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애국주의와 공포마케팅이 결합하면 국민의 여론을 모으기가 쉽다. 애국주의는 한 정권의 잘못된 행위를 국가 차원에서 정당화하여 반대편의 비판 논리를 원천봉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설득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박정희 유적과 국정원 해킹 의혹사건이 겹쳐 보이는 이유는 중요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도깨비방망이처럼 활용되는 애국주의 담론 때문이다. 국정원 직원 일동과 여당 대표는 ‘국가안보의 가치를 욕되게 해서는 안되고, 국가의 안위를 위해 국가안보기관의 의혹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혹사건에 대한 국회나 언론의 진상규명은 국익을 해칠 수 있으니 국정원의 자체규명에 맡기고 그 결과를 따르자는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비롯된 태극기 캠페인이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국무위원들은 태극기 배지를 달고 국무회의에 참석했고, 부처마다 태극기 사랑 70일 운동을 펼치고 있다. 태극기 게양, 배지 달기, 태극기 그리기, 글짓기가 주요 내용이다. 공무원 시험에 애국가 4절과 태극기 4괘가 출제되었다. 언론은 다양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을 유혹한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상찬이 넘쳐난다.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를 사랑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일을 타박할 수는 없다. 다만, 박정희 시대의 극단적인 ‘국민총화’나 반대파를 배제한 ‘국민통합’을 목적으로 벌이는 운동이 아닌지 의문스럽다.

 최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과정에서 삼성측은 합병이 애국·국익이고, 엘리엇의 주장은 국익훼손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많은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여론전을 펼쳤다. ‘삼성에 좋은 것은 국가에 좋은 것이다’는 구호가 먹혀들었다. 결국, 합병에 성공했지만, 합병이 애국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납득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해 장기적으로 국익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글로벌 기업이 주주친화적 기업문화를 만들고 헤지펀드의 전횡을 막으려는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애국주의에 호소하여 목표를 관철하는 방식은 세계화 시대의 흐름에 어긋나는 일임은 분명하다.

 메르스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특히 소비활동의 위축으로 내수침체가 심각하다. 일부 언론에서 ‘애국적 경제활동’을 주장하고 있다. 애국주의를 기치로 적극적인 소비활동을 벌여 시장 활력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촉진과 국내휴가를 위한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의 경제 침체상황은 메르스 탓도 일부 있지만, 저성장시대의 구조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경제회복과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대책으로 교조적인 이미지가 강한 애국까지 들먹이는 소통이어선 곤란하다.

 애국주의 유령은 시시때때로 출몰하여 다양하게 변주된다. 자발적으로 숙고하고 공감하는 애국주의는 설 자리를 잃는다. 극단 세력을 부추겨 반대편을 적으로 낙인하고, 상대에 대해 존중과 관용보다는 경멸과 역겨움을 갖게 한다. 법률의 왜곡과 자의적 해석으로 법질서를 문란시킬 수 있다. 정치 혐오증을 과장하여 정치의 순기능을 망각하게 한다. 정권의 잘못을 은폐하고 피해자에게 자기검열을 강화시키는 장치가 되곤 한다. 애국주의가 정치권력의 강력한 무기로 활용될 때 개인의 자유와 생존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과연 애국주의는 우리 공동체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지 묻고 싶다.

 권영후<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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