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사를 지켜라
조선의 역사를 지켜라
  • 권익산
  • 승인 2015.07.23 15:2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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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익산의 미륵사지 유적과 왕궁리 유적을 포함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새롭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기쁜 일이 있었다. 이로써 전북은 고창 고인돌 유적에 이어 세계문화유산을 두 곳이나 가진 고장이 되었다.

이 두 곳 외에 전북이 지켜낸 세계문화유산이 하나 더 있으니 조선왕조실록이 그것이다. 세계적으로 한 왕조가 그 시대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한 사례는 흔치 않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춘추관을 두어 실록을 편찬하였고, 이를 영구 보관하기 위해 한양에 춘추관사고, 전라도에 전주사고, 경상도에 성주사고, 충청도에 충주사고를 설치하였다. 고려 시대 거란, 여진, 몽골로 이어지는 북방민족과 왜구의 침입에 시달린 경험을 살려 남부 내륙 지방을 보관처로 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이 대비책이 오히려 실록을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다. 부산-한양으로 이어지는 일본군의 진격로에 위치한 성주사고, 충주사고, 춘추관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실록이 전쟁 초기에 차례로 불타 없어지고 만 것이다. 안전한 곳이라 여겼던 강화도에 보관 중이던 외규장각 문서들이 훗날 프랑스의 침략을 받는 과정에서 통째로 약탈당한 것을 보면 지리적으로 안전한 곳이란 큰 의미가 없는지도 모를 일이다.

평양을 점령하고서도 조선의 항복을 받지 못한 일본군은 금산을 점령하고 전라도 공격을 준비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경기전 참봉 오희길은 태조 어진과 실록을 안전하게 지킬 궁리를 하였다. 처음에는 땅에 묻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금산에서 붙잡힌 일본군이 성주사고에서 약탈한 실록 두 장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성주사고에 보관 중이던 실록은 다급한 김에 궤짝 채로 땅에 묻었지만 일본군에게 발각되어 불타 없어졌던 것이다.

이리저리 궁리를 하던 오희길은 태인에 사는 손홍록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라의 역사가 끊기지 않도록 보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는 간곡한 부탁에 손홍록은 오희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함께 공부한 안의와 함께 30여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전주에 와서 태조 어진과 실록을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겼다. 이때 옮겨진 책은 실록, 고려사 등 전주사고에 보관 중이던 1,368권 60여 궤짝과 태조 어진 등 실로 엄청난 양이어서 동원된 사람도 100명이 넘었다. 전주를 떠난 실록은 일주일만인 6월 22일에서야 내장산에 도착하였는데 그로부터 보름 뒤에 일본군이 대대적으로 전주성 공략에 나섰으니 이것이 유명한 웅치대첩이다. 웅치대첩에서 승리하여 일본군의 침략을 막아내기는 하였지만 참으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내장산에 도착한 손홍록과 안의는 내장산 깊숙이 자리 잡은 용굴암에 실록을 두고 지키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은 함께 혹은 번갈아가며 하루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실록 옆에서 먹고 자면서 1년 18일을 지켰다. 당시 손홍록이 56세, 안의가 64세였으니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실록을 지키는 데에는 이 두 사람의 노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장산 주지였던 희묵대사는 승병을 조직하여 실록을 지키는데 함께 하였으며, 정읍 지역의 이름 없는 농민과 노비와 심마니들이 실록을 옮기고 지키는 일을 수행하였다. 더욱이 희묵대사는 정유재란 때 내장산에 침입한 일본군에 맞서 승병을 이끌고 싸우다 순국하기까지 하였다.

일 년 넘게 내장산에 보관되던 실록은 일본군이 대대적인 전라도 침공을 위해 진주성을 공격한다는 소식에 충남 아산을 거쳐 황해도 해주로 옮겨졌다. 그 후 강화도와 영변 등으로 옮기면서 보존될 수 있었다.

만약 웅치전투에서 일본군을 막아내지 못했거나 손홍록, 안의 등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고려와 조선 전기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뿌리 깊은 나무나 정도전 같은 드라마도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실록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내용 뿐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온 노력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역사 기록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역사를 두려워한다는 것이고, 역사를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은 오늘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는 법이다.

 
 권익산 원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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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이씨조선 2015-07-27 17:12:37
대체 이성계가 권력을 잡아서 그들이 한 짓이 무엇인가?
고려시대때까지만 해도 주변 오랑캐와 일본을 리더할 정도로 강력한 나라였는데
이성계 그 한족출신 반역자가 권력을 잡고 고려양민 20만명을 대 살육시키고
고려의 찬란한 문화를 모조리 말살하여 한민족의 경쟁력을 잃게 만들었다.
그리고 임진왜란때 도성 버리고 명군에게 손벌리며 그들을 위해
자기백성을 오히려 더 수탈하였다.
그래서 이씨조선 잔재를 말살해야 한다
안티 이씨조선 2015-07-27 17:12:27
대체 이성계가 권력을 잡아서 그들이 한 짓이 무엇인가?
고려시대때까지만 해도 주변 오랑캐와 일본을 리더할 정도로 강력한 나라였는데
이성계 그 한족출신 반역자가 권력을 잡고 고려양민 20만명을 대 살육시키고
고려의 찬란한 문화를 모조리 말살하여 한민족의 경쟁력을 잃게 만들었다.
그리고 임진왜란때 도성 버리고 명군에게 손벌리며 그들을 위해
자기백성을 오히려 더 수탈하였다.
그래서 이씨조선 잔재를 말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