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구급차 교통사고 그리고 모세의 기적
119구급차 교통사고 그리고 모세의 기적
  • 김형준
  • 승인 2015.07.20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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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전대를 잡기가 두렵습니다.”

 몇 년 전 자신을 소방서 구급(응급·후송)대원이라고 밝힌 환자를 진료한 일이 있었다. 그 구급대원은 얼마 전 호흡곤란 증세를 보인 응급환자를 이송하던 중 긴급한 상황에 신호를 위반하고 운행하다가 다른 차와 접촉사고를 냈고 그 일 이후 운전에 두려움이 생겼다고 호소하였다. 상담을 하면서 환자는 사고에 대한 재경험 및 회피증상 등 경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을 보이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더욱 힘들어하는 문제가 따로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고 후 법적인 민, 형사상의 문제로 이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극심한 것이었다.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인사상의 불이익도 문제고,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벌금이나 합의금 등 경제적 어려움도 말 못할 고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아무리 응급환자라도 의료기관에 제시간에 도착해야 하는 골든타임을 생각해 무리한 운전을 할 자신이 없다며,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소방대원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도로교통법상 119구급차는 긴급차량으로 출동 시 중앙선 침범이나 신호위반이 허용되지만, 사고발생 시에는 운전자인 구급대원이 일반 차량과 같은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고 한다. 즉 신호위반 등으로 범칙금을 내지는 않지만 사고가 나면 구급대원 개인이 사고에 대한 합의금과 벌금 등 민, 형사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 소방당국의 자료를 보면 응급환자 이송을 위한 소방당국 구급차의 연간 교통사고 발생 비율이 일반 차량의 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부분 구급대원의 운전 미숙보다는 급박한 출동 과정 중 안전운전 불이행으로 인한 사고 발생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사정이 이러다 보니 119구급차 사고 귀책 비율이 57%에 달한다고 한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는 총 1,330대의 구급차를 보유하고 있고, 1일 평균 이송건수 4,178건, 이송인원은 4,302명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119구급차는 일반 차량보다 운행횟수가 월등히 많고 신속한 환자 이송을 위해 신호위반, 과속 등을 하므로 사고가 잦을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사실 구급차 사고 건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 보다 구급대원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환자 이송을 할 수 있도록 사고 후처리 지원 제도의 보완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선 구급대원의 예처럼 구급차는 보험 적용도 까다롭고 비용 문제, 책임 소재 확인 등 내부 절차도 엄격해 부득이한 사고임에도 범칙금, 경미한 차량 수리비 등을 자비로 해결하거나 팀원들이 갹출하는 사례도 빈번하여 실제로 구급차 운전자의 금전적, 심리적 부담감이 매우 큰 것이 현실이다.

 외국에서 운전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선진국들의 구급차량에 대한 운전문화를 접한 일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사이렌이 울리며 구급차가 다가오면 모든 차량들이 순식간에 좌우 도로로 차를 대고 멈춰 서서 구급차가 지나가고 사라져도 사이렌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대기하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한 일이 있었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그 혼잡하던 도로가 일순간 완벽하게 ‘동작 그만’을 하며 멈추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진국들이 이처럼 철저히 구급차에 대한 질서를 지키는 문화는 그들이 성숙해서가 아니라 이를 위반 시 어마어마한 벌금과 처벌이 따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우리와 같은 구급차량 교통사고도, 사고 후 책임공방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9일 전국 지자체 최초로 서울시의 모든 소방차량에 대한 운전자보험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긴급하게 출동하던 소방관이 사고를 냈을 때 개인의 책임을 면해주기 위해 공개입찰을 통해 보험사를 선정하고 확정 판결 시 벌금(2천만 원 내 지급)과 형사합의금(3천만 원 내 지급), 변호사 선임비(5백만원내 지급)을 보험에서 대신 책임지는 방안이라고 한다. 이처럼 서울시의 선도적인 조치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나 이러한 법률지원보험이나 운전자보험의 가입비율이 전국 소방·구급차량의 51%에 그치고 있고, 심지어 열악한 소방안전 예산과 잦은 사고로 인한 보험사들의 기피로 전남, 경기도 등 몇몇 광역 지자체는 아예 가입이 전무한 곳도 있다고 한다.

 위급상황에서 긴급차량을 운행할 때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구급대원은 물론 구해야 할 환자까지 함께 위험에 처할 수 있으며 이는 모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달린 문제일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신속한 구조와 안전한 이송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구급대원들의 딜레마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며, 또한 시민들은 ‘모세의 기적’과 같은 성숙한 교통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김형준<신세계병원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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