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찾아서 : 송헌주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찾아서 : 송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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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7.2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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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헌주(1880~1965)  

  선생은 1907년 헤이그특사의 통역을 맡았으며, 1916년 한인중앙학원 교장으로 초빙되어 하와이로 다시 건너간 뒤 제일한인감리교회 목회를 거쳐 1917년 이승만이 교장으로 있던 한인여학원 부교장으로 임명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미주에 알려진 직후 선생은 하와이 한인들로부터 독립금 3만 5천 달러를 모금하여 임시정부의 외교활동 등에 사용하도록 지원하였다. 이러한 활약으로 구미위원부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나 1920년 위원 자리에서 물러난 후 LA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사업가로 크게 성공하였다.

  1930년 광주항일학생운동을 지원하며 미주 독립운동을 촉진시키고자 선생은 김규식과 함께 미주한인연합회를 이끌며 재미한인의 통합을 위해 헌신하였다. 선생이 앞장섰던 미주한인연합회는 대한인국민회가 주도한 미주 한인단체 통합운동으로 더욱 발전하였다. 선생은 1937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면서 LA에 설립된 국민총회관의 건축위원장직을 맡아 1938년 낙성식을 치렀다. 이러한 공로로 1939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에 취임해 미주 한인사회를 이끌어 나갔다. 재미한인단체의 역량집중과 항일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1941년 조직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국방과장을 맡아 맹호군으로 불리던 캘리포니아 주 민병대 소속의 한인국방경위대 경위로 임명되었다. 1944년 재미한족연합회 위원으로 활약하다 해방 직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유엔연합국회의에 임시정부대표단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전주보훈지청 제공, 문의 ☏063-23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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