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의 자랑 세계문화유산
익산의 자랑 세계문화유산
  • 김영규
  • 승인 2015.07.0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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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가뭄으로 우리 시민들의 속을 시커멓게 태우고, 메르스로 인하여 국민들에게 공포와 불안이 지속되는 와중에 우리 익산의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포함된 백제문화 유적자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는 역사적 경사의 자랑스런 날을 맞았다.

 제헌의회는 1949년 7월4일 지방자치법을 제정했지만 6.25전쟁과 5.16 군사정변으로 중단되고 30년 후인 1991년 지방자치의회가 부활했고 단체장 선거는 1995년에 실시되어 오늘이 명실상부한 지방자치 부활 20년이 되는 날이다.

 필자는 1949년에 태어나 70여년 가까이 내 고향 익산에서 살아왔다.

 대학생활을 포함 군 생활, 직장 등 10여년을 수도권으로 오고 갔지만 주민등록 이전 없이 줄곧 토박이로 살면서 오늘같이 당당하고 자랑스런 경우는 처음이다.

 오랜 동안 타 지역 지인들로부터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비난과 비아냥을 들으면서 그것을 부정하고 해명하느라 좋은 세월 다 보내고, 우리 익산을 자랑할 변변한 것이 없어 내청춘 다 보내고 백발이 다 되었노라고 농담도 마다하지 않았다.

 익산역사 안쪽에 위치한 이리 기관차 사무소에서 30여년을 근무하신 부친께서는 1977년 11월 이리 역 화약 폭파사건으로 이리 역 주변이 폐허로 변한 후 이승을 달리 하시기 전까지 이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교통도시라고 자랑하셨고, 기차를 타고 통학하는 학생이 많아 낮에는 10만 밤에는 5만의 인구인 이리는 대단한 교육도시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시었으니, 그것은 익산시민의 공통된 자랑이었으리라 믿어본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익산은 공장이나 기업유치, 석재산업의 도시, 보석 도시 등 일자리와 경제성의 우위를 자랑으로 여겨왔다.

 타 도시에서는 수백, 수천억 원이 투입된 호화 청사를, 주민이나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는 공원이나 문학관, 역사관 건립을 자랑으로 국제경기 유치 후 제정이 파탄 날 지경인데도 자랑이었다.

 고도역사가 조용하게 숨 쉬고 있었던 우리 익산은 이제 다른 어느 지역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역사유적 지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 진정 자랑스럽다. 우리 익산의 자랑이 바로 이 것이다.

 이제 자랑스런 역사 문화유산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재평가하여 더욱 신경써서 유지 보존하고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할 책무가 있다.

 또한 익산시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획기적인 발전과 도약을 이룩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한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세계인의 문화가 되도록 우리가 앞장서서 세계를 향하여 자랑하고 지구인을 유혹해야한다.

 이제 세계문화유산 도시로서 자부심과 함께 익산의 문화 정책은 경제적, 산업적, 관광의 가치뿐만이 아니라 인본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익산의 문화 정책은 시민의 자존감을 찾아주고 그들의 일상 속 작은 변화를 통하여 문화 수준을 높여 주어야 할 때이다.

 김영규 / 한국예술인 총연합회 익산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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