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건망증과 표절
독서 건망증과 표절
  • 이동희
  • 승인 2015.07.05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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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아왔다.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직업상의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저 책을 읽는 순간이 즐거우며, 글을 쓰는 시간이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했다는 충족감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책읽기와 글쓰기-책읽기 지도와 글쓰기 지도를 필생의 업으로 여기며 산다.

 책읽기를 권장할 때 돌아오는 가장 잦은 질문은 ‘읽은 내용을 잊지 않는 방법’이다. 책의 끝 장을 읽을 때쯤이면 첫머리에서 읽은 내용이 가물가물하거나 책장을 넘겨 뒷장을 읽을 때 앞장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문장을 읽고 다음 문장을 읽을 때면 앞의 문장이 떠오르지 않거나 연결이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

 선천적인 난독증[難讀症-글자 그대로 글자를 읽거나 인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말하는데, 피카소, 아인슈타인, 톰크루즈 등 유명인들도 난독증을 앓았다고 알려져 있다.]이 아니라도, 이것은 매우 정상적인 정신작용이다. 망각은 인간의 정신활동을 활성화하는 중요한 작용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읽은 것과 체험한 것을 모두 뇌에 저장해 둔다면 인간의 뇌는 포화상태를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스스로 강요하지 않아도 우리의 뇌는 체험한 사실을 그 중요도에 따라 깊이-얕게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와 중요도의 흐름을 따르는 시간벨트에 오래-잠깐 떠오르게 할 뿐이다.

 독일의 은둔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소설「……그리고 하나의 고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 부제 ‘문학 건망증’으로 보듯이 ‘독서 건망증’에 대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건망증의 필연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날 ‘나’는 “어떤 책이 인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는가, 어떤 책이 지금까지의 생활을 뒤바꾸어 놓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책꽂이로 가서 손에 집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끄집어낸 다음, 전리품이라도 되는 듯이 그것을 들고 돌아선다. 그리고는 책을 펼쳐 뒤적거리다가 내용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읽는다. ‘나’는 좋은 책을, 그것도 아주 썩 좋은 것을 집었다고 깨닫는다. 그것은 완벽한 문장과 지극히 명확한 사고의 흐름으로 짜여 있다. 결코 알지 못했던 흥미 있는 지식으로 가득 차 있고 굉장한 놀라움이 넘친다. ‘나’는 그런 문장 구절마다 밑줄을 긋거나, 한쪽 귀퉁이에 ‘아주 훌륭하다’라고 느낌표를 찍거나, 요점을 기록해 두고자 한다. 그럴 때마다 이미 누군가가 그 문장, 그 구절, 그 귀퉁이에 자기와 똑같은 문장부호와 요점을 기록해 둔 것이 아닌가! 아주 친숙한 필체, 바로 ‘나’자신의 필체였던 것이다. 앞서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자신이었던 것이다.

 글쓰기를 지도할 때 받는 가장 빈번한 질문은 ‘글쓰기의 목적과 방법’이다. 그럴 때마다 ‘인생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성장에 있음’을 강조한다. 앞의 소설에서도 화자가 되뇌는 말은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이다. 삶의 전 과정을 통해서 추구해야 할 것은 목적[승리]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순간마다 변화[성장]하는 것이다. 승리에 목을 매는 삶은 목적[승리]을 이루기 전에는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변화[성장]를 추구하는 삶은 매 순간, 어떤 장면[공간]이나 모두 의미요 가치가 된다.

 요즘 표절 문제가 문화계의 큰 화제다. 작가 신경숙의 작품이 표절 논란에 휩싸여 있다. 표절 시비의 와중에도 신 작가의 발언에 공감이 가는 대목이 하나 있다. “작가는 독서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찌 작가뿐이겠는가? 모든 필자들의 공통적인 고민일 수 있다. 앞에서 인용한 쥐스킨트 소설의 화자 ‘나’처럼, 내가 읽고 감동을 하였으면서도 전혀 기억을 못 하는 것이 독서 건망증이요, 문학 건망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건망증이 승리를 위한 것이냐, 성장을 위한 것이냐에 따라 표절과 창작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그것 또한 작가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기도 하다.

 왜 책을 읽는가, 왜 글을 쓰는가? 책읽기와 글쓰기는 인생을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동력은 끊임없이 망각하고 기억하기를 되풀이한다. 그래서 ‘망각하기 위하여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역설이 성립될 수도 있다. 읽은 것을 망각하고, 쓴 것을 기억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 인생은 죽는 그 순간까지 이를 통해서 멈추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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