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법원 설치안에 찬성하는 이유
상고법원 설치안에 찬성하는 이유
  • 유길종
  • 승인 2015.06.28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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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은 참 어렵다. 재판을 받는 사람이나 재판을 하는 사람 모두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이 재판이 붙더라도 1심에서 끝을 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오판도 나오고, 딱히 오판이 아니더라도 패한 쪽으로서는 그 결과를 흔쾌히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2심에 항소를 하고, 그것도 안 되면 3심인 대법원에 상고한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1, 2심에 대한 불복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고, 특히 상고사건은 도를 넘게 폭주하고 있다.

 상고율을 낮추기 위한 온갖 시도가 있었지만, 상고사건은 계속 증가해서 2014년에는 37,000건이 접수되었고, 올해는 40,000건을 돌파할 것이 예상된다고 한다. 대법관 한 명이 담당하는 사건 수는 연간 3,000건을 넘어서는 상황이 되었다. 대법관들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다고 하더라도 1년에 3,000건을 제대로 처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1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에 8~9건을 처리해야 하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충실한 심리는 고사하고 사건기록을 한 번이라도 읽기 어려울 것이 뻔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법관들은 사건을 충실히 검토하지 못하고 재판연구관들의 검토의견이 그대로 대법원판결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소문이 나고, 실제로 대부분의 상고심 사건은 기록을 살펴보았으나 상고는 이유가 없으니 기각한다는 서너줄짜리 판결문을 보내고 끝이다. 대법원은 사건을 보지도 않고 덮는다는 불만이 팽배해 가는 것이다.

 나름 억울한 사정이 있어서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대법원에 상고를 한 당사자들은 최종심인 대법원이 1심이나 2심보다 훨씬 충실하게 심리하고 현명하게 판단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데, 대법원 재판이 이렇게 졸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그 개선책으로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2013년 7월부터 ‘상고심 기능강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여 상고법원제도의 도입을 건의하였고, 지난해 12월 국회의원 168명이 상고법원 설치안을 발의하였다. 그 내용은 우선 대법원이 모든 상고사건에 대해 사전심사를 해서 ‘법령해석 통일’이나 ‘공적 이익’과 관련된 사건들은 대법원에서 재판하고, 개인 간의 권리구제에 관한 사건들은 새로 설치하는 상고법원에서 담당하게 한다는 것이다.

 상고법원 설치안이 발의된 이후 각계에서 찬반양론이 분분한 상황이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상고법원 설치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측이 있지만, 상고법원 설치안에 반대하면서 대법관 증원을 주장하는 측도 있는데, 필자는 다음과 같은 현실적인 이유에서 상고법원 설치안을 지지한다.

 첫째는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법관 증원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상고심의 문제는 대법관 수를 다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법관의 수를 50명으로 늘린다고 하더라도 연간 40,000건에 이르는 사건을 충실히 심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대법원이 대법관 증원을 반대하고 있고, 국회나 정부가 대법원의 반대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대법관 증원을 지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법관 증원은 현실적으로 난망한 일이다. 상고재판에 대한 불만이 도를 넘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실현가능한 방안을 제쳐두고 한가하게 이상론만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번에 상고법원 도입이 좌초된다면 앞으로 최소한 5년에서 10년 동안은 아무런 이유도 기재되지 않은 대법원 판결문을 계속 받아볼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둘째는 상고사건의 주종을 이루는 개인 사이의 권리구제형 사건을 상고법원으로 넘기고, ‘법령해석 통일’이나 ‘공적 이익’과 관련된 사건들은 대법원에서 심리하는 방안이 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들에게 문제 되는 사건은 대부분 권리구제형의 사건인데, 현재 대법원은 사건의 홍수 속에서 이런 대부분의 권리구제형 사건을 제대로 심리하지 못하고 있다. 하급심의 사실오인은 쳐다보지도 않고, 1심과 2심의 결론이 같으면 그대로 덮는다는 인상을 줄 정도이다. 이렇게 하는 것보다 상고법원에 경륜이 있는 법관을 충분히 배치하여 이들로 하여금 권리구제형의 사건을 충실히 심리하게 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이런 이유로 필자는 상고법원 설치에 찬성하고 이번에 발의된 상고법원 설치안이 통과되어서 그동안 누적된 상고심 재판에 대한 불만들이 상당 부분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유길종<법무법인 대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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