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냥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
동냥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
  • 이춘석
  • 승인 2015.06.21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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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국토부가 뜬금없이 지방청의 조직과 기능 재편에 관한 용역을 실시한 것도, 부산청과 익산청을 분리하는 중간결과가 나왔다는 것도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국토위 소속의 김윤덕 의원과 함께 급한 대로 차관을 만났다. 분리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는 요구에 대해 차관은 “도민들의 정서와 지역균형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것은 차관 선에서 답변할 수 있는 범위의 모든 것이었지만 분리 계획에 대한 결정권한은 이미 그 밖에 있는 듯했다.

 용역 중간결과엔 익산청을 전북청과 전남청(광주청)으로, 부산청은 부산청과 대구청으로 분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용역을 발주한 시점은 작년 11월. 국토부는 이달 안에 익산청을 시작으로 한 중간 결과 보고회를 마치고 7월엔 최종안을 내겠다는 계획이다. 어떻게 해서든 9월에 제출되는 정부 예산안에 반영해 내년엔 가시적인 단계를 밟겠다는 심산인데, 초고속으로 진행되는 이와 같은 일정은 누가 봐도 딱 총선에 맞춰진 계획이다.

 현재 경제부총리의 지역구와 대통령의 연고지는 모두 대구·경북. 게다가 최 부총리는 일찌감치 내년도 총선 출마를 시사해왔다. 국토부 입장에서도 지방청이 늘어나면 고위직 인사적체에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니, 도민들이 이번 프로젝트를 이들의 이해관계가 시의 적절하게 맞아떨어진 플랜으로 의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러한 정치적 의심을 배제한다면 익산청의 분리 시도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먼저 지방청 자체가 대규모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통폐합을 해도 모자란 마당에 분할한다는 것 자체도 설득력이 없지만, 굳이 비교를 해봐도 부산청은 410여명 정도로 5개청 중에 가장 규모가 큰데 비해 익산청은 평균을 조금 웃도는 300여명 수준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것은 지역균형과 형평이라는 측면에서 부산청과 익산청의 분리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2015년 공공기관만 기준으로 보면 부산·경남엔 32개, 대구·경북엔 17개 기관이 각각 배치돼 있어 이미 부산·경남지역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특히 자산관리공사나 주택금융공사 등 큰 규모의 공공기관들이 17개나 포진된 부산 입장에선 지방국토관리청 하나 분리해서 대구로 옮겨놓는다고 해도 크게 표도 안 날뿐만 아니라 지역균형에 배치되는 일도 아니다.

반면에 전북과 전남의 경우는 어떠한가. 광주·전남엔 15개의 기관들이 소재해 있지만, 전북엔 5개가 고작이다. 영·호남 격차보다 더 심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 특별지방행정기관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약 9대 1로 불평등도가 더 심해진다. 그중에서도 호남권을 대표하는 기관들은 거의 광주·전남에 배치돼 있고 전북엔 그나마 익산국토관리청이 전북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유일한 기관이었다. 그런데 이마저 반으로 쪼개서 광주로 옮긴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는 이미 30년 전에 전남과 전북으로 분리돼 있던 국토관리청을 이리청으로 통합한 조직발전사의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결국, 처음부터 목적은 대구청을 신설하는 것이었다. 연구목적은 지방기관의 광역화라 해놓고 지방청의 분리·신설이라는 결론을 도출한 이 엉뚱한 연구용역 역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끼워 맞추기에 불과하다. 현 정부에 대해 이미 지역균형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은 오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있는 것도 축소하려 하니, ‘동냥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말라’는 외침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필자는 무엇보다 이 문제가 호남 내 지역갈등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그것은 이 시대착오적인 꼼수를 계획한 세력들이 가졌을 또 다른 의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남 내에서도 이중차별을 겪는 우리 도민들의 상실감은 백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전북 정치권은 익산청의 분리를 막아내는 데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우선은 국토위의 전북 의원들과 필자를 포함한 익산지역 의원을 중심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도내 정치권은 모든 정치력을 동원할 각오를 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부산 지역 의원들과의 공동대응도 모색할 것이다. 더 이상 빼앗기는 전북은 없다는 도민들과의 약속을 위해 익산국토관리청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것이 현 정권에 지역균형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려주고 제 몫을 찾아오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춘석<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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