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선택할 존엄사 인정해야
죽음을 선택할 존엄사 인정해야
  • 김판용
  • 승인 2015.06.18 16: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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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고 1년 김경희
존엄사란 최선의 의학적 치료를 다하였음에도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질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질병에 의한 자연적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은 선택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은 채 이 세상에 태어나 자연적으로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죽음의 경우에는 자신의 의향과 관점에 따라 선택할 권리가 있다. 더욱이 병원에서 병치레를 하다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존엄사의 필요성은 점차 대두되고 있다.

의미 있는 죽음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삶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생을 마감하는 것이 의미 있는 죽음일 것이다. 하지만 호전 가능성도 전혀 없는 채로 병원에서 무의미한 치료를 받으며 고통 속에 연명하고 있는 환자들이 매우 많은 것이 현실이다.

자신이 힘이 아닌 오로지 기계에만 의존해 삶을 연장하며 살아가는 환자들은 과연 얼마나 행복하며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을까. 환자들의 고통과 삶의 의미는 무시한 채 생명연장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 환자의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환자 가족들의 삶에 대해서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물론 환자의 상황은 환자자신에게 가장 절망적이고 슬프겠지만 환자의 가족들도 정신적인 고통과 함께 큰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된다. 기약 없는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부담할 병원비는 끊임없이 나오고 결국 가족들 간의 갈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언젠가 TV에서 존엄사를 선택한 사람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악성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자신이 생을 마감할 날을 정해둔 채 삶의 가치를 찾으며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면서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삶의 가치를 찾는 이유는 하루하루를 즐기고 보람차게 살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진정한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존엄사가 합법적으로 인정되고 존엄사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어 환자 자신도 아름다운 죽음을 맞고 가족들도 좋은 마음으로 이별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익산고 1년 김경희
 

<강평>메르스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원고를 받았다. 그래서 김경희 학생의 존엄사 인정의 글은 울림이 있었다. 우선 문장이 안정됐고, 무엇보다 균형 잡힌 관점이 돋보이는 글이다. 좋은 논술은 상대의 반론을 미리 예견해서 봉쇄하는 작업도 있어야 한다. 존엄사를 인정하지 않는 측의 주장도 언급하면서 이를 반박해나갔더라면 더 설득력 있는 논술이 되었을 것이다.

김판용(시인·금구초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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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혁 2015-07-05 07:29:44
김경희 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어른들의 글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존엄사, 안락사란 주제는 저 멀리 병원에 있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과, 나의 부모, 나의 형제, 나의 자녀들의 얘기가 되어야 합니다. 내 얘기가 되면 눈에 불이나고, 가슴에 불이 타올라,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해 행동으로 밀고 나가게 됩니다! *안락사법 청원 > http://euthanasia.modo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