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 네 편
내 편 네 편
  • 이동희
  • 승인 2015.06.1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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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대통령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얼마 전 임기를 마친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대통령을 그린『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이고 다른 하나는 ‘외교를 통해 본 김대중 대통령’을 그린 김하중의『증언』이었다. 무히카 대통령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는 ‘우리에게도 이런 대통령이 있으면 우리 국민이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부러운 생각이 부쩍 들었다면,『증언』을 읽으면서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훌륭한 대통령이 있었구나!’하는 자부심이 부쩍 들었다.

 두 대통령은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이뤄냈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살해와 투옥의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정치적 상대자들의 온갖 박해와 비난과 모함을 견디면서도, 심지어 국민들로부터 오해와 질시 어린 불신을 사면서도 자신의 영위보다 나라의 장래와 국민의 행복을 생각하다가, 마침내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치인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박해했던 사람들을 용서했던 점에서도 많이 닮았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을 읽다 보면 ‘대통령의 표상’을 보는 듯하다. 정치적 제스처나 이미지 조작을 위한 과장과 허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개인의 소신이나 인기를 의식하여 일시적으로 부리는 호기가 아니라 몸에 배어 있으며, 생활철학으로 굳어진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이다. 이 때문에 “무히카는 라틴아메리카의 현자(賢者)”라는 덕담을 라틴아메리카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종으로부터 들었을 것이며, “무히카 대통령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정치인이란 원래 소박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일깨워줬다”고 영국 BBC는 극찬했을 것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대통령의 전 재산이라고는 30년 된 자동차 한 대, 그 차를 손수운전하며 출퇴근하는 대통령, 거처는 화려한 대통령궁 대신 부인 소유의 낡은 농장, 그 거처를 경찰관 단 두 명의 경호를 받는 대통령, 부를 축적하기보다는 월급의 90%를 기부하는 대통령, 그러면서도 무히카 대통령 자신은 가난하기보다는 부족한 게 없을 뿐이라고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난의 한계를 무너뜨린 인간 승리의 귀감이 될 만한 분이다. 1975년 납치 사건, 1980년 사형언도, 그 뒤 미국으로 망명, 거듭 고배를 마신 대통령 선거 등, 한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초의 한계를 시험당한 분이다. 눈에 보이는 박해와 위협보다 더 악랄한 것은 음성적으로 가해지는 사상과 인격적 음해와 비난을 용기로 극복한 분이다. 그런 박해세력들을 관용의 정신을 발휘하여 용서하였다.

 그 관용의 정신이 정치적 이익을 위한 제스처가 아니라는 점은 그 후 김 대통령의 행적을 보면 알 수 있다. 살해위협과 온갖 음해로 괴롭혔던 적대 지역과 사람들까지 포용하며 ‘통큰정치’를 펴나간 것이 이를 입증한다. 최장수 주중대사를 역임했으며, 3년 8개월이나 김 대통령을 보필했던『증언』의 저자 김하중 역시 의전비서관을 제의받고는 김 대통령에 대한 기존의 비난과 대중들의 혐오감 때문에 “청와대에 가고 싶지 않고, 그냥 해외에 대사로 나가겠다.”고 거절하였겠는가?

 그럼에도, 김 대통령은 초대 비서관은 물론이요, 주요 권력의 핵심자리에 자신의 수족보다는 그의 반대편에서 그를 음해하던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끌어안는 정치를 폈다. “이제 내가 모든 이를 용서했는데, ‘내 편 네 편’이 어디 있느냐, 우리 모두 힘을 합해 IMF의 위기를 극복하자. 당신의 능력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써 달라.”고 설득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김 대통령과 불가근불가원의 거리에서 멈칫거리던 김하중 같은 정통 외교관도 오랜 시간 지근거리에서 김 대통령을 보필하고 나서야, 책머리에 이런 헌사를 남겼을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존경심과 사랑으로 이 책을 고(故) 김대중 대통령님께 바칩니다.”

 새 정부 들어 고위급 인사의 난맥상이 점입가경이다. 집권 3년이 안 되는 시점에 3명의 국무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더니, 고심(?) 끝에 내놓은 국무총리 후보자 때문에 많은 국민이 속병을 앓고 있다. 이럴 때 박근혜 대통령이 탕평책까지는 아니더라도, 대국적인 견지에서 ‘내 편 네 편’을 가리지 않는 ‘통큰정치’는 할 수 없을까, 자파의 이익보다는 능력에 따라 널리 인재를 구하였던 두 대통령을 벤치마킹할 수는 없을까, 아쉬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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