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전문가로 만들어 드립니다
당신을 전문가로 만들어 드립니다
  • 나영주
  • 승인 2015.06.09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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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인터넷에서 전문가 매뉴얼(?)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이름하여 ‘당신을 전문가로 만들어 드립니다.’ 어느 분야에서라도 아는 척하며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매뉴얼인데, 예를 들어 ‘재즈 전문가’로 만들어주는 매뉴얼은 다음과 같다. “재즈는 절대~들을 필요 없습니다. 매뉴얼만 숙지하시면 됩니다. 일단 재즈 전문가가 되기 위해 좋아해야 하는 뮤지션들이 있습니다. 피아노 쪽에서는 빌 에반스와 키스 자렛을 꼽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꼽는 것은 다른 재즈 전문가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유리 케인이나 미쉘 페트루치아니 정도입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CD 한 장 안 사도 됩니다. 기타리스트 좋아한다고 하면 펫 메쓰니, 조지 벤슨 이런 애들은 꼽지 마십시오. 볼프강 무스피엘이나 에그베르투 지스몽띠, 엘런 홀쓰워쓰 이 정도 가능합니다. 그냥 댓글마다 밀튼 나쉬멘토 덜덜덜 하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노라존스의 돈노와이’를 듣고 나서부터 재즈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절대 고백하지 마십시오. 캐무시 당합니다.”

 눈치 챘다시피 실제 재즈 전문가는 아니지만, 재즈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도록 아는 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매뉴얼이다. 재즈 음악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으나 한편으로는 대중적이지 않은 생소한 사람을 들먹이며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매뉴얼인 것이다. 인터넷은 공개성, 파급력, 접근가능성 등 여러 측면에서 대중들이 손쉽게 본인의 견해를 제시할 수 있게 해주는 담론의 장이기도 하지만, 익명성 뒤에 숨겨진 대중들의 ‘인정 욕구’는 위와 같이 골절된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헤겔의 ‘인정 투쟁’ 개념을 차용하자면, 바야흐로 인터넷 인정투쟁의 시대다.

 대중의 욕망은 양가적이다. 속성상 무리에 속해 있으면서 안정감을 느끼다가도 한편으로는 타자와 구별 짓고 싶어 한다. 근래의 인터넷에서는 종종 이러한 대립하는 욕망이 충돌하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어떤 사회적 이슈나 의문점이 넷상을 휩쓸면 댓글에서 쉽게 전문가를 스스로 칭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예컨대 ‘메르스의 전파 경로’에 관하여 논쟁이 붙었다면,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서 거의 본인의 주장이 100% 확실하다고 목청을 높인다.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니라 그럴싸한 각종 레퍼런스가 뒤를 잇는다. 심지어는 실제 자신이 전문가라고 ‘인증’하는 사진까지 올라온다. 이런 이들을 비하하는 ‘X문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전문가 인정투쟁’의 승자를 결정짓는 방식은, 민주적(?)이게도 다수결이다. 댓글에서 치열하게 싸우다가 어느 한 편이 네티즌들의 지지를 받게 되면 그 순간 팩트가 된다.

 이러한 ‘X문가’들의 특징은 실제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견해가 확실하다고 주장하는데 주저함이 없으며, 타인의 의견에 대하여 상당히 배타적이다. 나아가 나중에 본인의 견해가 틀렸다는 것이 밝혀지더라도 절대 책임을 지지 않는다.

 현실에서 전문가인지 여부의 판단은 쉽다. 국가가 공인한 자격증이 있으면 일단은 전문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실제 전문가로서 실력이 있는지 여부는 두고 보아야 하고,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부단한 노력으로 ‘업데이트’ 되지 않아 녹슨 자격증이라면 전문가라고 할 수 없다. 요즈음은 의뢰인이 법적 쟁점에 관하여 미리 인터넷을 찾아보고 오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서 보고 왔는데 이런 경우 제 주장이 맞지 않나요?” 이런 의뢰인들은 보통 변호사에게 단정적인 답변을 원한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 쉽게 결정되는 ‘팩트’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확실한 팩트를 말하는 것은 곤란한 측면이 있다. 전문가는 보통 확실한 답보다는 여러 경우의 수를 가정하여 답변을 내놓기 마련이다.

  필자의 실력이 짧은 탓이기도 하지만 확립된 대법원의 판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꼭 그 판례의 사실 관계에 들어맞는다는 보장이 없기에 조심스럽게 조언을 해주는데, 이런 경우 의뢰인은 만족을 못하기도 한다. 의사인 지인은 ‘요즘 환자는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해서 심지어 특정한 약이나 주사를 처방해 달라고 까지 한다’라는 말을 한다. 물론 의뢰인이나 환자들이 더 잘 알고 오는 경우가 있어서 현실세계의 전문가들을 긴장하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어찌 됐든 모두가 전문가인 세상에서 전문가로 살기는 어렵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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