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효치 시인집 ‘각시붓꽃’
문효치 시인집 ‘각시붓꽃’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5.06.0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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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면의 밤/ 뼛속으로는/ 뜨신 달이 들어오고// 여기 체액을 섞어/ 허공에 환장할 그림을 그리는 것// 유난히 암내도 많은/ 남의 각시”「각시붓꽃」전문

 주변에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흔하디 흔한 식물들의 이름도 소중하게 불러내는 문효치(72) 시인. 칠십을 넘어선 나이에도 여전히 “줄을 타는 광대(「광대」)”라 불리기를 원하는 시인은 그렇게 특별한 이름을 호명하고 있다. ‘좁쌀냉이꽃’ ‘층층이꽃’ ‘멍석딸기꽃’ ‘노랑어리연꽃’ ‘각시붓꽃’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를 통해서 생명이 있는 곳에 말이 있고, 이름이 있고, 존재가 있음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문 시인이 시선집 ‘각시붓꽃(도서출판 지혜·2만5,000원)’을 냈다. 한정판으로 출간된 이번 시선집에는 시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시편들을 만날 수 있다. 오랜 기간 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지닌 생의 의지를 노래했던 그와 의식을 함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시인에게 생명은 존재의 거울이자, 의식의 거울이다. 평소에는 우리가 그냥 지나쳐 버리기 십상인 여리고 미약한 벌레와 식물들은 역설적으로 우리 곁에 소우주가 존재하고 있음을 시를 통해 말했던 그. 시인은 생명의 안과 밖,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면서 시인은 어떤 것도 더하거나 덜어낼 필요 없이, 그 자체로 가장 소중한 것임을 일깨운다.

 그런가 하면, 무령왕시와 백제시편에서는 세속과 절연하는 숭고한 인간의 정신으로 재발견되는 백제인과 마주하게 된다. 어느 해를 기점으로, 시인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죽어간 존재들을 찾아다녔다. 이미 질 것이 분명한 싸움이지만, 피하지 않았던 백제인들의 모습을 토해낸 언어와 언어 사이. 삶의 어떤 국면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는 실존의 의지를 분명하게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신진숙 문학평론가는 “문효치 시인의 시에는 세속의 자리가 없다. 그는 언제나 더 격정적으로 삶의 순간들을 사랑하고 포착한다. 세속을 벗은, 숭고한 형태로 고양된 감정들이 그의 시를 이끌어가는 힘이다”면서 “시인은 절대적인 비극과 그것과 마주한 강건한 자유의지가 부딪치는 긴장 속에서 살아가길 갈망한다. 하여 그는 생의 고통 앞에서 물러서지 않으며 당당하게 맞선다”고 평했다.

 군산 출생으로 1966년 ‘한국일보’와 ‘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연기 속에 서서’‘무령왕의 나무새’‘백제의 달은 강물에 내려 출렁거리고’‘백제 가는 길’‘바다의 문’‘선유도를 바라보며’‘남내리 엽서’‘계백의 칼’‘왕인의 수염’‘칠지도’‘별박이자나방’ 등이 있으며, 문효치 시전집(도서출판 지혜간)과 ‘저기 고향이 보이네’‘낙타의 초상’‘대왕암 일출’등의 시선집이 있다. 시문학상, 동국문학상, 대통령상 (교육부문), 평화문학상, 시예술상, 한국펜문학상, 대한문학상, 군산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 제5회 김삿갓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지리산인문학상등을 수상했고, 동국대, 동덕여대, 대전대, 추계예대, 주성대 등에서 문학강의를 했다. 한국문인협회 시분과협회장,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장을 역임, 현재 계간‘미네르바’ 주간, 시예술아카데미 대표, 올 2월부터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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