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야기 : 웅치대첩
한국사 이야기 : 웅치대첩
  • 권익산
  • 승인 2015.06.0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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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치대첩

전주에서 진안을 가려면 순두부찌개로 유명한 화심두부마을을 거치게 된다. 마을을 지나면 세 갈래 길이 나온다. 현재 가장 많이 이용되는 길은 1997년 무주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위해 개통한 4차선 도로이지만 그 전까지는 구불구불 아찔한 2차선 도로를 올라 모래재 터널을 지나야 진안고원에 들어 설 수 있었다.

하지만 모래재 길보다 더 오랜동안 이용하던 길은 화심두부마을 지나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곰티재를 넘는 길이었다.

지금은 차가 다니지 않는 곰티재 정상에는 웅치전적비가 있어 이곳이 조선시대에도 무진장에서 전주를 잇는 중요한 고갯길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본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은 전라도를 지켰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부산에서 한양으로 내달아 도성을 점령하면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일본군의 생각은 한양을 빼앗기고도 끈질기게 이어진 조선인의 저항으로 착각이었음이 드러났다.

평양까지 이어지는 긴 보급로는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공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바닷길을 통해 식량을 수송하려는 계획도 바다를 지키는 이순신에 막혀 일본군은 궁지로 몰리고 있었다.

그런데 전라도를 점령하는 방법이 꼭 이순신의 수군을 이기는 방법밖에 없나? 육지로 전라도를 점령하면 되지 않을까?

일본군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왜 그런 생각을 못했겠는가. 일본군은 평양을 점령한 후에도 전쟁이 끝나지 않자 육로로 전라도를 점령해 전라도의 곡식으로 군량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먼저 일본군 만 육천 명이 금산을 점령한 후 진안을 거쳐 곰티재를 넘어 전주로 진격하는 계획을 세웠다. 조선군도 전주로 가는 주요 길목인 배티재(이치)와 곰티재(웅치)를 넘기 전에 일본군을 막기 위해 배티재에는 권율이 이끄는 천오백여명의 군사를 배치하고 곰티재에는 이복남, 정담, 변응정 등이 이끄는 관군과 황박이 이끄는 의병 등 천 여명의 군사를 배치하였다.

드디어 금산을 출발한 일본군 육천여명이 7월 8일 곰티재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공격이 시작되자 의병장 황박이 최전방에 나가 지키고, 나주 판관 이복남은 제2선을, 그리고 김제 군수 정담은 정상에서 최후 방어를 담당하여 쳐들어오는 일본군을 맞아 싸웠다. 첫날 전투는 조선군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튿날 병력을 충원한 일본군의 총공격까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복남과 황박 등은 후퇴하였지만 정담의 부대는 마지막까지 왜군을 맞아 싸우다 전사하였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실록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정담이 포위되었는데 부하 장수가 정담에게 후퇴시키기를 권하니 정담이 말하기를 ‘차라리 적병 한 놈을 더 죽이고 죽을지언정 차마 내 몸을 위해 도망하여 적으로 하여금 기세를 부리게 할 수는 없다.’ 하고 꼿꼿이 서서 동요하지 않고 활을 쏘아 빠짐없이 적을 맞추었다. 이윽고 적병이 사방으로 포위하자 군사들이 모두 흩어져 버리고 정담 혼자서 힘이 다하여 전사하였다.”

가까스로 웅치를 넘은 일본군은 전주의 안덕원까지 진출하였지만 이미 주력부대를 웅치 전투에서 잃어버린 상태였다. 때마침 병력을 이끌고 온 황진의 부대가 합류한 조선군이 왜군을 공격하자 왜군은 금산으로 달아났다. 같은 날 배티재에서는 권율이 이끄는 천오백여명의 조선군이 만여 명의 왜군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두었고 그 다음날에는 이순신이 한산도에서 대승을 거두니 이로써 육지와 바다 모두에서 전라도를 지켜낼 수 있었다.

웅치와 이치에서의 승리는 조선군이 육지에서 거둔 최초의 승리였으며, 이 승리로 전라도를 지켜냄으로서 임진왜란의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전투였다. 또한 이 전투는 전라도에서 모은 관군과 의병이 스스로 전라도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이 전투에 대한 평가는 당시에도 대단한 것이어서 지휘관이었던 권율 스스로 행주대첩보다 더 큰 승리였다고 평가하였으며 일본조차도 임진왜란 3대 전투 가운데 하나로 뽑았다.

  

 

권익산 원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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