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기와 시대정신의 문제
인문학의 위기와 시대정신의 문제
  • 원도연
  • 승인 2015.06.0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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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도가 OECD국가 최하위권을 맴돌고, 직장인의 7%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극단적인 자살뉴스가 전해지는 편치 않은 세상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다음 세대의 삶과 생활수준이 지금 세대만 못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청년들이 좌절하고 우울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인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엄중한 현실에 대한 지식인들의 침묵과 무관심이다.

 한국의 근대사에서 한 시대가 위기에 빠질 때 가장 먼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발언하며 시대정신을 일깨웠던 대학과 지식인들이 일제히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설 자리를 잃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의 하나다. 한국의 모든 대학들이 첨단산업과 기술경영으로 초집중하면서 인문학은 대학에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학문이 되고 있다.

 인문학의 쇠퇴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왔다.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의 혁명은 우리 사회를 새로운 단계로 진입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과 사회의 문제는 간단하게 무시되었다. 스마트폰의 놀라운 변화에 넋을 놓고 있던 그 사이에 바야흐로 우리는 기술결정의 사회에 진입해 있었다. 상상력의 힘이라고 칭송했던 과학기술의 현란한 발전이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면서 세상은 배금과 첨단의 무한경쟁으로 빠져들었다. 이제 무엇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사회를 정의롭게 하느냐의 문제보다 무엇이 돈이 되느냐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세상이 되었다.

 근대 인문정신의 문을 열었던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물질문명을 기계적으로 ‘습득하는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 창의성과 융복합 등의 새로운 구호들이 등장하고 역설적으로 인문정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과학과 기술의 번영에 기여하는 기발한 아이디어, 돈이 되는 상상력과 창의성이 자리잡고 있다.

 인문학이 무너진 그 자리에는 지금 장인정신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시대에 대한 관심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는 장인정신은 과거 중세시대의 길드와 같은 기술이익집단을 양성하는데 그칠 수 있다. 과거 장인들의 연합체였던 길드는 내향적이고 폐쇄적인 조직체계로 인해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경제환경이 변하고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길드조직은 시대에 대응할 수 없는 이권집단으로 변질했던 것이다. 길드가 취했던 배타성은 집단 이기주의와 도덕 불감증을 불러왔다. 개인의 도덕성과는 상관없이 집단이 권력을 형성하게 되면서 자기 길드에 이익이 되는 제안만을 취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문학이 무너져버린 사회가 어떤 어둠을 가져오는가, 그리고 거꾸로 중세의 암흑기를 깨치고 등장한 인문주의의 부활이 어떤 역사적 진보를 가져왔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는 사회가 어떤 문제의식과 비판정신을 가질 수 있겠는가. 무미건조한 규칙의 준수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건전한 시민의식을 어디서 만들어낼 것인가. 우리가 지금 사는 사회에 분명히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우리는 서로 눈감고 앞으로만 나가고 있지 않은가.

 대학에서 인문학이 무너져버리고 사람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렸을 때 사회는 건강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인문학의 대중 강사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인문학이 밥 먹여주느냐 혹은 인문학이 일자리를 얼마나 만들어 내느냐는 질문은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첨단산업의 발전은 일자리를 줄이고 생명과학은 인간의 수명을 대책 없이 늘려놓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3만불 시대를 향유할 수 없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3만불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게 할 것이 아니라면 대다수 사람들에게 얼마나 부자가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가며 살 수 있는가를 가르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국가는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성숙을 조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누가 이 고민을 할 것인가, 과학자들인가 아니면 인문학자들인가.

 원도연<원광대교수/문화콘텐츠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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