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퇴장하는 ‘언론보도 스크랩북’
역사 속으로 퇴장하는 ‘언론보도 스크랩북’
  • 우기홍 기자
  • 승인 2015.05.31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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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순창군수들이 업무상 관용차를 이용할 때는 각자의 성격이 묻어나곤 했답니다.

 관선에 이어 민선을 지낸 특정 군수는 운전자가 운행속도를 높이면 "사람 죽이러 드느냐"라며 나무랐다고 합니다. 또 다른 군수는 정상속도를 유지하면 갑갑한 나머지 차량 핸들에 욕심(?)을 냈다는 후문까지 있었습니다.

 순창군의 경우 수십 년 전부터 최근까지 군수가 출근한 후 긴급한 상황이 없으면 맨 처음 접하는 것은 ‘언론보도 스크랩북’입니다. 동료보다 일찍 출근한 공보계 직원들이 그날그날의 신문과 방송 등의 주요 소식을 발췌해 붙인 일종의 기사 모음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군수가 참고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정부의 주요 시책이나 도내 및 지역소식은 물론 일부 군정의 따끔한 비판기사까지 빼곡히 들어 있답니다. 하루 일정이 빠듯한 군수에게는 언론에 게재된 세세한 여론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빨리 파악할 수 있는 스크랩북이 요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크랩북 작성은 관련부서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스크랩북을 대하는 과거 순창군수의 반응도 제각각이었답니다. A 군수는 군정과 관련된 비판기사가 발견되면 가차없이 공보계장에게 스크랩북을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고래고래 목소리를 높인 사례는 비일비재했답니다. 어떤 기사가 스크랩 되어도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군수도 있었습니다.

 순창군이 사용하는 스크랩북은 한 권이 총 60쪽입니다. 보통 10일에 한 권을 기사 붙이는 데 이용합니다. 하지만, 군정과 기사에 거명된 부서 및 공무원의 애환이 잔뜩 담겼던 이 스크랩북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제작회사에서 더는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재 군에는 아홉권의 여유분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군에서는 빠르면 6월부터 특정회사에서 선보인 ‘스크랩 마스터’란 프로그램을 통해 각 언론의 소식을 출력해 기존 스크랩북 기능을 대체할 방침입니다. 현재 종이 스크랩북과 함께 시범적으로 운영 중입니다.

 기존의 언론보도 스크랩북 퇴장을 지켜보는 27년차 기자의 심정은 정 들었던 동료 한 사람을 역사 속으로 보내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는 필자의 애환도 오롯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순창=우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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