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김형준
  • 승인 2015.05.19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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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죽고 싶어요”

 올해 65세가 된다는 할머니 한 분이 내가 센터장으로 활동하는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찾아 상담하게 되었다. 사회복지사가 마을 찾아 우연히 실시한 우울증 선별검사와 자살사고 검사에서 매우 높은 점수가 나와 전문의 심층상담을 위한 내담한 것이었다.

  뇌경색으로 한쪽 팔다리가 마비되어 병 수발을 해야 하는 남편과 단둘이 시골집에서 살고 계신 할머니는 ‘죽고 싶다’는 말만 반복하셨다. 작년까지 해오던 공공근로를 올봄부터 65세가 넘어가면서 고령으로 자격조건이 안 되어 할 수가 없게 되면서 생활이 막막해서 힘들다는 이유였다.

  기초노령연금과 미혼인 두 아들이 객지에서 어렵게 살며 가끔 보내주는 십여 만원 정도의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데 턱없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며 그래도 작년까지는 할머니가 공공근로하며 받은 60만 원 정도의 수입이 생명줄이었는데 이제 그마저 끊기니 정말 막막하다는 하소연이었다.

  시골에 가진 작은 농가와 장성한 두 아들이 있어 기초수급권자가 될 수도 없고, 공공근로도 적은 예산에 지원자도 많고, 힘들 일은 나이 제한이 있어 안타깝지만, 제도상 현재는 방법이 없다는 복지담당 공무원의 설명이었다고 한다. 아! 어쩌란 말인가? 정신과의사이고 자살전문가라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내가 부끄럽고 이렇게 무력하다니!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48.6%(2014년 기준)로 1위인 나라이다. 그것도 2위인 스위스의 24%의 두 배를 넘어서는 압도적 1위이다. 최근 7년 동안 빈곤층에 속하는 노인 인구가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분석한 결과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과 최저생계비 120% 미만의 차상위 계층에 속하는 소득 취약 노인 가구 수는 2006년 72만 가구에서 지난해에는 152만 가구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이고 그중에서도 특히 노인자살률은 엄청나게 높다.

  노인자살률은 십 만 명당 81.6명으로 2위인 헝가리의 24명의 네 배 가까운 수치로 지난 10년간 3배가 급증했다. 연간 자살자는 14,000여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5,000여명의 3배 가까운 수치이며 이 자살자 중 많은 비율이 노인 자살자이다. 노인, 빈곤, 질병, 농어촌, 독거노인 혹은 노인부부가구 이 단어가 자살의 위험인자이고 노인 자살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 전체 자살률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다.

 올해 우리나라는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을 전망이라고 한다. 이는 인구가 5천만이 넘으면서 1인당 GDP가 3만 달러가 넘는 일곱 번째 나라가 되는 것으로 말 그대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치가 점점 개인의 삶의 질과 행복과는 동떨어진 말이 돼가는 것 같다.

  이렇듯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어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가 현재 높은 청년실업률과 낮은 경제성장과 맞물러 해결될 가능성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정말 이대로 진행되어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 이른바 “삼포세대”라는 지금의 청년층이 은퇴할 무렵에는 정말 재앙적인 결과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은퇴 후 노인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것은 공적 연금이다. 단순하게 선진국 하면 곧 은퇴 후 ‘연금받는 나라’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기간의 경제침체와 경제 성장 둔화 속에서 대규모 일자리와 호황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재의 우리나라에서 낮은 금리 등을 감안할 때 개인 스스로 월급을 쪼개 노후를 사적으로 준비하기란 점점 힘든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나라도 연금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고 결국 이것이 노인 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공무원 연금을 개혁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불똥이 국민연금을 튀어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것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일어나고 있다. 현행 소득대체율 40%에서 점진적으로 50%까지 올리자는 논의를 두고 1,700조의 세금을 더 걷게 되는 것(연금은 세금이 아니므로 이 말은 전혀 근거가 없다)이라며 정부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2012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5.2%(미 수령자가 많기 때문에 실제는 27%)로 OECD 회원국 평균(65.9%)에조차 미치지 못했다. 현재 국민연금의 평균 지급액은 32여 만원으로 한 달 1인 최저생계비 62만원의 절반수준이고 4인 가구 평균 생활비 314만원의 10분의 1 수준이다.

  젊어서는 열심히 일하고 은퇴 후 기본적인 생활할 만큼의 연금을 받는 나라가 되는 것! 이것이 선진국 아닐까? 물론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결국 공적 연금 강화는 피해갈 수 없는 사회문제의 근본 해결책임을 정부는 이해하길 기대해 본다.

 김형준<신세계병원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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