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사범 엄벌보다 중요한 것
성폭력사범 엄벌보다 중요한 것
  • 유길종
  • 승인 2015.05.1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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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여학생 제자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서울대 모 교수가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언제부터인지 성폭력사범에 대하여는 중형의 선고가 잇달고 있고, 위 사건도 이러한 경향의 실례이다. 성폭력범죄를 엄단해야 한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론이 있을 수 없지만, 어떤 경우에도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성폭력사범을 엄단하기 위한 전제로서 처벌받는 행위가 무엇인지 명확해야 할 것이고, 절차적으로는 성폭력사범들도 다른 피고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한 여러 권리가 그대로 보장되어야 하고,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 그들의 혐의가 증명되어야 한다.

 모든 형법 교과서에는 강간이나 강제추행은 폭행·협박으로 간음 또는 추행하는 것이고, 여기서 말하는 폭행·협박은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를 것을 요한다고 설명되고 있다.

 필자가 실무에 들어와 강간사건을 접했을 때 가장 고민한 것은 주로 피의자(피고인)가 한 폭행·협박이 과연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많은 경우 교과서에 설명된 정도의 폭행·협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무에서는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넓게 인정함으로써 약간 의문이 있는 경우에도 강간죄를 쉽게 인정하는 경향이었고, 그래서 실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럴 바에는 강간죄보다는 낮은 단계의 갈간죄(喝姦罪)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쉽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찌 되었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폭행·협박을 수단으로 간음한 경우 어렵지 않게 강간으로 처벌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강제추행도 문제이다. 강제추행은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으로 추행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인데, 폭행·협박의 정도도 문제이고, 추행이 무엇인지도 문제이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의 수단인 폭행·협박을 대단히 넓게 인정해 왔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뒤에서 껴안고 춤을 추다가 유방을 만진 경우도 강제추행을 인정하였다(대법원 2002. 4. 26. 선고 2001도2417 판결). 이런 식으로 한다면 원칙적으로 불가벌의 영역에 있는 단순추행과 가벌적 영역에 있는 강제추행의 구별이 모호해지는 문제가 있고, 강제추행을 ‘강제’추행이라고 할 이유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어떤 행위가 추행에 해당하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교과서에는 추행이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혐오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일체의 행위라고 설명되고 있는데, 대법원은 여성에 대한 추행에 있어 신체 부위에 따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유로 직장상사가 피해여성의 어깨를 주무른 행위도 추행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는 등(대법원 2004. 4. 16. 선고 2004도52 판결) 추행을 넓게 인정하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 직장상사가 부하 여직원들과 손깍지를 끼고, 어깨를 껴안고, 팔목을 주물렀다는 이유로 강제추행죄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것을 보았다.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기는 하였지만, 성희롱 사례에조차 해당하지 않을 행위에 대하여 구속영장까지 청구하는 것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일단 강간이나 강제추행 등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이 재판과정에서 방어권행사를 위한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고 있는지 의문이다. 피해자의 보호차원에서 도입된 비디오 등 중계장치에 의한 중계방식의 증인신문이 이루어진다면 피고인의 반대신문이 적절히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실무에서는 피고인의 퇴정이 너무 쉽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런 경우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이 제대로 보장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성폭력범죄에 대한 엄단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와중에 한 명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생긴다면, 이는 성폭력범죄의 엄단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가치를 잃는 것이 될 것이다.

 유길종<법무법인 대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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