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種)의 다양성’ 정책으로 명품 한옥마을로 거듭나야
‘종(種)의 다양성’ 정책으로 명품 한옥마을로 거듭나야
  • 송영준
  • 승인 2015.05.14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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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에서 자급자족하는 모습을 그린 예능프로그램에서 바나나를 불에 구워서 맛있게 먹는 걸 보고는 필자도 따라한 적이 있는데 생각만큼 맛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그냥 먹는 품종과 요리용 품종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흔히 껍질을 벗겨 먹는 바나나는 ‘캐번디시’라는 품종이고, 정글에서 불에 구워먹거나 코코넛 기름에 튀겨 먹는 바나나는 품종이 따로 있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민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바나나가 멸종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 지난해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다.

 원래 바나나는 품종이 다양해서 어떤 병충해가 유행해도 특정 품종이 타격을 받는 경우는 있어도 전체 바나나가 멸종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도가 높고 잘 자라는 ‘캐번디시’라는 종이 발견된 이후 당장 눈앞에 돈이 되는 것에만 몰두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바나나 농장이 ‘캐번디시’만 재배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바나나에 치명적인 병이 대만에서 발생해 재배하던 바나나 나무 70%가 죽었고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하였다. 이 병을 치료할 방법이 전혀 없어서 ‘바나나 불치병’으로 불리고 있으니 바나나 전체를 멸종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바나나가 멸종위기에 빠졌던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60년대에는 ‘그로스 미셸’이라는 품종이 세계 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이 품종만큼 당도가 높고 잘 자라는 바나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로스 미셸’에 치명적인 균주가 퍼지면서 바나나가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다행히 영국 캐번디시 공작의 정원사가 지금의 ‘캐번디시’ 품종을 발견한 덕분에 지금도 바나나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종의 다양성은 생태계적인 측면에서 중요하다. 한 가지 종으로 집중될 경우 동종간의 교배가 이어지면서 유전형질이 단순화되어 자칫 전멸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정 질병이나 급격한 환경변화에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다양한 품종이 경쟁하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UN에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가치와 종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UN생물다양성협약’을 맺고 생물다양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높이고자 전 세계를 누비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강원도 평창에서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리기도 했다.

 전북 관광산업의 랜드마크가 되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한옥마을이 바나나의 멸종 위기와 닮지는 않았는지 상상해본다. 원래 전통가옥 보존을 목적으로 지구를 지정했던 한옥마을에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대표적인 도시형 슬로시티인 한옥마을의 인기가 날로 상종가를 올리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문제점 역시 깊어지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커피숍과 퓨전음식점 등 각종 상업시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가장 한국적인 도시인 전주의 전통과 빼어난 경관 등을 자랑하던 한옥마을이 시끌벅적한 관광지로 변질하면서 다양한 볼거리와 전통문화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금 당장 물질적인 이익 때문에 전국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길거리 음식으로 상업화되고 있는 것은 한옥마을이 마치 ‘캐번디시’라는 단일 품종만 생산하는 바나나 농장처럼 예상하지 못한 충격으로 흔들릴 수 있는 매우 취약한 구조로 되어가고 있어 매우 위험해 보인다. 각종 꼬치류, 패스트푸드, 음료, 아이스크림류 등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주전부리를 파는 것으로 그칠 경우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의 마음을 얻지 못해 이대로 가다가는 이른 시일 안에 몰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한옥마을을 다녀간 관광객들의 불만과 실망감을 적은 블로그가 생기기 시작했고 SNS 상에서도 퍼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옥마을은 700여 채에 이르는 한옥 집단촌으로 실제 거주민들이 살고 있다. 일부는 관광객이 묵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어 한옥의 우수성과 전통예절을 체험할 수 있어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러므로 전주 한옥마을의 가치를 유지하고 세계적 명소가 되기 위해서는 국적불명의 길거리 음식과 한옥지붕을 한 커피전문점이 아닌 제대로 된 향토음식을 제공해야 하고 가슴을 열고 힐링하면서 걷고 싶은 슬로시티 한옥마을이 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돈벌이가 아닌 미래를 내다보고 한옥마을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지금의 상업화 쏠림 현상을 지양하고 종(種)의 다양성 정책을 마련해서 다시 찾고 싶은 한옥마을, 명품 한옥마을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송영준<대한지적공사 전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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