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꽃숭어리
하늘의 꽃숭어리
  • 진동규
  • 승인 2015.05.1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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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 내게 왔다. 집 앞 저수지 댐공사 현장 진흙 구덩이에서 추켜 든 돌이다. 돌이 내게 왔다고 표현하는 것은 좀 억지라고 누구는 말할지 모르지만 내게 왔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진펄을 뒤집어쓰고 있는 돌이었다. 노루궁둥이 한쪽을 슬쩍 내비치고 있는데 내 손은 벌써 두 번 세 번 엉덩이에 얹힌 흙더미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때깔이 달랐다. 돌에도 가문이 있었나 보다. 먹물이 배어 있는 것이 무게감을 주었다. 기품이 있었다. 우선 목욕부터 시켜놓고 볼 일이다.

 이 근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돌이다. 이렇게 수마가 잘되어진 돌은 없다. 뒷산이 규석 산이다. 단단하고 모가 난 부싯돌 샛돌 같은 것들이다. 잘 다듬어진 몽돌은 바닷가에서나 볼 수 있는 돌인데 이곳은 바다가 가까이 있지만, 명사십리다. 모래 언덕이 십리가 넘는다. 반듯하게 뻗어나가는 모래 언덕을 파도가 아무리 허옇게 물어뜯어도 파도가 물러난 뒤에 보면 곱디고운 모래 언덕일 뿐이다. 소라 껍데기나 조개껍데기뿐 자갈 하나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수석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다.

 그런데 이 녀석은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나 보다. 내가 안아 들어 올리려는데 녀석은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고집스럽게 엉덩짝은 묵직한 것이 머리 부분이라 해야 할까, 고개를 쳐든 듯이 뽑아내는 것이 고집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이건 바다가 다듬어 놓은 몽돌이 아닌가.

완도 어디였던가, 호박덩이 정도나 되는 들들이 야단법석하는 것이 아닌가. 그 와글거리는 광경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파도를 타고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나가는 목침보다 큰 돌덩이들이 해변에 가득 몰려들었던 군중들로만 보였다. 무어라고 제 소리를 하는데 어쩌면 그렇게 일사불란한 것이냐?

 아니다. 내게 온 이 녀석은 완도 바닷가에서 본 야단법석은 아니다. 둥근 돌이 아니다. 머리 부분이 잇고 있는 듯 없는 듯 쭉정이 같은 시늉을 또 하고 있는 것이 개성이 뚜렷하지를 않은가. 계란 속의 병아리 흉내를 내는 것일까. 아니다. 저 정도면 공룡알 속의 날개 달린 아기 공룡의 잠덧을 하고 있는 듯한 그 모양이다.

 그렇다 맞다. 저수지 둑 아래 고인돌이 하나 있다. 몇 천 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인돌이다. 개울가 언덕에 자리한 바위 이 분지를 지켜주시라고 세웠을 터이다. 그러면 그 개울가 물소리들이 공룡의 잠덧을 어루면서 저 형상을 만들어 냈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저 돌은 이 근처에서 나온 돌이 아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왔다는 말인가. 고인돌 사내에게 묻자. 고려까지는 이 골짜기가 제법 번성한 고을이었다. 장사현 이었다. 이 분지의 주산이 송림산인데 이 마을 사람들은 송림산을 송림산이라 부르지 않는다. 장방청이라 부른다. 장방청이라면 그 시대에는 관리들이 머물던 곳을 부르던 이름이다. 이웃고을과 합병하면서 사람들은 떠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떠나버린 빈터를 그 아픈 이름을 부르면서 논밭을 일구고 살았다. 와등, 서당골, 장방청 오백년도 넘은 그 이름을 그대로 부르고 살았다.

 고인돌 사내야 다시 묻자. 긴 세월을 다 지켜본 돌도끼의 사내야, 장방청 떠나던 이들이 잊고 간 돌이냐 아니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냐. 오호라 아무래도 하늘에서 날아온 꽃들이었겠구나. 고인돌 사내는 그 꽃들을 안고 돌아와 제 계집에게 안겨 주었던 것이었구나. 먹빛 꽃받침 검붉은 꽃숭어리 그대로가 아니냐, 하늘의 꽃숭어리-

 진동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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