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인권 그리고 과학기술
경제와 인권 그리고 과학기술
  • 김종일
  • 승인 2015.04.2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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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어느 공항을 나서더라도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것들이 있다. 우리나라 국적의 세계 굴지 기업들의 대형 광고물들이다. 해방 이후 지난 몇 십 년간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매번 이런 광고물을 볼 때마다 감개무량하다.

 정확히 21년 전 일이다. 막 일본의 버블경제가 꺼지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미국에 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머물고 있던 당시, 필자와 가깝게 지내던 일본인 교수와 한일관계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두 나라의 과학기술과 경제적 격차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적이 있다. 그 교수 가라사대 한국이 일본에 적어도 30년은 뒤져 있으며 그 차이가 벌어질 수는 있어도 절대 좁혀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듣는 입장에서 자존심이 상하기는 했지만, 일리가 없는 얘기도 아니었다. 당시 일본은 세계 전자제품 시장을 장악함과 동시에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었던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었던 반면에 우리는 지금의 중국처럼 조악한 품질의 초저가 상품을 겨우 수출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최근에 읽은 어느 경제 관련 기사를 보면 우리나라 대졸 초임이 일본을 앞섰고 1인당 국민소득도 내년이면 역전될 것이라는 전망이라고 한다. 기분 좋은 소식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수치보다도 더 피부로 와 닿는 것은 다른 아시아 국민들이 우리나라를 보는 시각이다. 우리나라를 떠오르는 새로운 아시아의 맹주로 바라보는 느낌을 매우 강하게 받는다. 또한 아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모델로 하는 경제발전에 많은 관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는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러 나라를 돌아보며 느낀 것 중 하나는 경제력은 바로 인권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저소득 국가들이 택한 대표적인 경제성장 방식은 외국 기업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는 대신 저렴한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 자국의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저가의 서비스를 타국에 제공하는 것 이상이 되기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경제 식민지’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도장만 찍지 않았을 뿐 가난한 나라는 부자 나라의 경제 식민지다. 저소득 국가 국민들을 바라보노라면 매우 안타깝다. 우리나라도 7-80년대 어려웠던 시절 수많은 우리의 ‘공돌이 공순이’들이 단지 삶을 영위했을 뿐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는 곳을 잘 알고 있다. 식민 국민의 삶은 괴롭다. 과정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어쨌든 단기간에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우리나라가 대단히 자랑스럽다.

 경제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야만 한다. 중동 국가들처럼 석유가 나오거나 지하자원이 넘쳐나지 않는다면, 과학기술을 진흥해서 독창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팔아먹을 수 있는 부가가치 높은 상품을 생산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독창적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성장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 출발은 분명히 교육이 될 것이다. 사실 우리 스스로 세계 최악의 교육 시스템이라 평가하는 우리나라의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많은 단점에도 우리나라의 압축 성장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한 우대 정책이 함께 있었다.

 요즘 교육 현장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미래는 매우 불안하다. 솔직히 매우 비관적이다. 대학 입시만 보더라고 우수한 학생 대부분은 과학기술 분야가 아니라 의치학 계열로 진학하고 있다. 과거와 분명히 다른 양상이다. 또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수도 현저하게 감소했다. 전북대학교만 보더라도 실험실에 외국인 대학원생들이 넘쳐난다. 우수한 두뇌들이 과학기술을 외면하고 절대 숫자마저도 감소하고 있다. 거기에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등을 고려하면 우리의 잔치는 여기가 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곧 답습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일본교수의 말 그대로 우리나라가 일본의 30년 뒤를 따라가는 것이 된다. 모두 머리를 모아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김종일<전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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