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 문제와 제도보완
감정노동자 문제와 제도보완
  • 윤진식
  • 승인 2015.04.2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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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인간화라는 서비스 노동의 사회적 재설계 논의가 정책적으로 필요한 시점

 은행이나 백화점에 가끔 들를 때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상냥한 목소리로 고객들을 맞이하는 안내원을 접하게 된다. 손님 입장에서는 이러한 웃음과 상냥한 태도의 안내가 즐겁겠지만, 안내하는 직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심리적으로 무거운 짐을 억지로 지는 경우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는 과잉친절을 요구받는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우리는‘감정노동자’라 부른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처음으로‘감정노동’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감정노동’이란 소비자들이 우호적이고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외모와 표정을 유지하고,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압하거나 실제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등 감정을 관리하는 노동이라고 말하였다.

 우리나라는 2013년 기준 직업 규모상으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 수가 약 74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는 임금 노동자 전체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중 주요 서비스 감정노동은 호텔 객실, 병원 간병사, 유통고객서비스, 간호사, 전화 교환원, 유통 판매직, 은행 텔러, 은행 콜센터 상담사 등에서 높게 분포되어 있다.

  직업군별로는 음식 서비스 관련직이 감정노동 정도가 가장 심했고, 영업 및 판매 관련직, 미용· 숙박· 여행· 오락· 스포츠 관련직, 사회복지 및 종교 관련직 순으로 뒤를 이었다. ‘감정노동’은 주로 여성, 연령별로는 30대 이하에서 가장 많이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노동종사자 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감정노동자의 48.9%가 ‘우울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전체 응답자의 30.6%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으며, 4%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백화점 모녀, 땅콩회항까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갑질 횡포’ 사건들이 유난히 많이 발생하였다. 그 사건들 이면엔 어김없이 감정노동자들의 고통과 애환이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14년 감정노동자 소비자 의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 시민들의 67%가 과도한 친절에 대해서 불편하다고 답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고객만족이라는 슬로건으로 고객들에게는 무조건 친절해야 하는 서비스지침을 감정노동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감정노동에 대한 문제 인식에서 한국은 후진국이다. 유럽은 감정노동이 고령화나 고용 불안 문제 등과 함께 미래 사회의 10대 심리적 위험 요인 중 하나가 될 것이라 보고, 산업재해 승인 범위를 ‘사고 중심’에서 ‘질병 중심’으로 전환해 기준을 완화하는 추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1년 감정노동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노동자와 사업주에게 배포한 바 있지만, 정책 권고나 그 이상의 강제성 있는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아 감정노동자들은 어떠한 보호막도 없이 방치되는 상황이다.

 3차 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에 와서, 어느 때 부터인가 ‘친절’은 서비스업체의 최고의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경영주들은 직원에게 인성교육과 더불어 감성교육 등 예절교육도 시키면서 그 이행실태 확인을 위하여 근무하는 곳곳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직원의 태도를 하루종일 녹화하여 평가의 도구로 삼고 있기도 한다. 이를 토대로 당장 퇴출이 되거나 승진과 임금에까지 영향을 미치기에 직원들은 하루종일 긴장된 상태에서 자기 아닌, 전혀 다른 사람으로 근무를 하게 되어 긴장된 직장을 벗어나면, 자기의 하루 행동에 자책으로 자기를 미워하면서 감정의 통제가 안 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정신장애의 한 부분인 불안이 나타나거나, 우울증에 빠지고, 폭음을 하면 폭력적이거나 파괴적인 행동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서비스 노동에 대한 일의 성격과 노동의 가치가 저 평가되고 있는 것은 감정노동 해결을 더디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 감정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태도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감정노동의 문제점을 알려야 할 것이며, 법률적인 보완도 필요하다 할 것이다.

  먼저 근로기준법 영역에서 현재의 근로의 개념에 정신노동과 육체노동만을 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감정노동’을 포함시키며, 아울러 산업재해 개념에도 감정노동을 산재의 원인으로 명시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의 업무상 질병을 일으키는 요인의 범위에도 감정노동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개별 기업에게 감정노동 가이드라인을 제시함과 동시에 실효적인 제도적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특히‘노동의 인간화’라는 서비스 노동의 사회적 재설계 논의가 정책적으로 필요한 시점이 되었음을 우리 모두 직시해야 할 때가 되었다.

 윤진식<공인노무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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