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그리고 사회적 자본
그날 이후, 그리고 사회적 자본
  • 김형준
  • 승인 2015.04.21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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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하건대 내 자신도 어느 순간부터 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게 되었다. 순간순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울컥하는 마음과 분노, 그리고 이런 마음이 괴로워 외면하고 싶었다. 어제 출근을 하며 빗속에서 삼배일보를 하는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故이승현군의 유가족 일행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다.

  아~! 그렇지. 아직도 아픔은 계속되고 있고 가족들은 저렇게 진실을 위해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하고 있구나! 세월호 인양과 진실규명을 요구하며 지난 2월 23일 진도 팽목항에서 출발하여 서울 광화문 광장을 향해 가는 중 두 달 만에 전주에 도착한 것이라고 한다. 부끄럽고 미안하고 회피하고 싶었던 내 자신이 비겁해 자꾸만 눈물이 났다.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아직도 세월호에는 9명의 사람이 남아있고 아픔과 갈등은 여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유령처럼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다. 일 년 전 그날 대한민국은 부정부패와 적폐와 무능으로 300여명의 억울한 생명을 희생시켜야 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 더욱 슬픈 것은 대한민국이 이런 아픔마저도 포용하고 치유할 능력이 없음을 다시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비극적인 일이지만 희생자가 많은 교통사고일 뿐 아니냐고 하며 이제 그만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앞서 고백했듯이 내 자신부터도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과연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무엇인가? 한 선박회사가 더 많은 사람을 태우기 위해 배의 구조를 변경하고 더 많은 화물을 실기 위해 평행수를 줄이고 돈이 들기 때문에 고박같은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다고 한다.

  그 선박회사의 모체는 오랜 기간 권력과 유착되어 기생해온 점이 의심되는 ‘사랑을 실천한다는 종교단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것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 각급 기관과 정부는 모르는 척 눈감아주고 오히려 법까지 고쳐 선박회사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너무 오랜 기간 서로 협조가 잘돼서 가족같이 한 통속이라 이들을 ‘관피아’, ‘해피아’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자 구조의무를 가진 선장과 선원은 직업윤리의식은 어디로 사라지고 승객을 버리고 제일 먼저 탈출하였고 해경을 이를 도왔다. 선장과 선원들 대부분은 아직 배의 구조조차 파악하지 못한 비정규 계약직 직원이었다고 한다. 또한, 구조에 나서야 할 해경은 우리 능력 밖의 문제라며 민간 업체를 동원하여 국가의 의무를 대신 맡겼고(민영화?) 민간 업체 선정 역시 무언가 유착의 냄새가 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것을 지휘하고 통제할 최고 지휘부의 국가재난조정 기능은 처음부터 작동하지 않았고 철저히 무능으로 일관했다. 이익을 위해 안전이 희생되고 사람들이 죽었다. 그 과정에 부정부패와 잘못된 관행과 정경유착이 있었고, 전문성과 직업윤리를 기대할 수도 없는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타락한 종교와 무능한 국가기관과 정치지도자들이 있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다른 사람도 아닌 이제 꽃피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을 희생시켰다. 현재 대한민국이 가진 모든 문제가 집약적으로 세월호 안에서 벌어졌고 결국 참사가 일어났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현실이고 대한민국이 이렇게 엉망인 나라인 건가? 바로 이점이 세월호 참사의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교통사고가 아니라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의 극복해야 할 과제이며 의무인 것이다.

 그런데 더욱 절망하게 하는 것은 그날 이후 일 년간 보여준 우리의 모습이다. 대통령은 분명히 작년 4월 16일 이전과 이후는 다른 나라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진실을 규명한다는 세월호특별법과 진실규명위원회는 일 년의 진통 끝에 어렵게 만들어졌지만, 온갖 이유로 개점휴업 중이고 유가족들은 아직도 거리에서 헤매고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무엇인들 못 하겠는가? 그런데 그들에게 욕하고 조롱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억울하게 죽은 자식이 왜 죽었는지 진실을 알려달라고 단식을 하는 유가족 옆에서 폭식하며 종북, 좌파라고 매도하는 무리들이 실제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다니!

 한 사회가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만큼 필요한 것이 사회적 자본이라고 한다. 사회적 자본이란 그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는 신뢰, 규범, 제도, 네트워크 그리고 연대의식을 말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망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의병활동 등으로 나타난 사회적 자본이 튼튼했기 때문이고 구한말 결국 나라를 잃은 것은 오랜 폭정과 삼정 문란 등으로 연대의식이 사라지고 사회적 자본이 무너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며 현재 가장 우려되는 점이 바로 국민 간에 감정적 연대의식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잊지 말자. 대통령께서 남미 순방 중하신 말씀이라고 한다. “심장을 가진 자는 망각이 어렵다.”

 김형준<신세계병원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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