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리스트, 철저히 수사하라
성완종리스트, 철저히 수사하라
  • 이춘석
  • 승인 2015.04.12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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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임덕. 박근혜 정부 초기만 해도 이런 단어는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40%대 이하로 떨어지는 법이 없던 콘크리트 지지율은 수월하게 60%대를 넘나들기도 했다. 그러나 총리 인선을 비롯한 연이은 인사실패,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등으로 드러난 청와대 핵심 요직끼리의 권력다툼, 당권 장악의 실패 등으로 단단했던 콘크리트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작년 말 연말정산 세금폭탄 사태가 터지며 와르르 붕괴해 지지율은 20%대로 추락했다. 집권 3년차, 임기의 절반도 지나기 전에 조기 레임덕을 맞게 된 것이다.

 갈 길이 아직도 먼 박근혜 정부는 마음이 다급해지자 권력기관을 동원해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완구 총리가 임명되자마자 발표한 대국민담화는 그 신호탄이었다. 검찰 역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포스코를 비롯한 재계 전반은 물론이고 자원외교비리, 방위산업 비리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이며 정치권과 공직사회를 동시에 압박해 갔다.

 전 정권을 희생양으로 삼아 현 정권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시도는 레임덕에 빠진 정부가 즐겨 쓰는 카드다. 박근혜 정부 역시 지지율이 하락하자 국민과의 소통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대안으로 지지를 끌어내는 대신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그런데 성완종 회장의 급작스러운 자살로 전 정권의 심장부를 겨눴던 사정의 칼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성 전 회장의 시신과 함께 발견된 작은 메모지엔 박근혜 정부의 현직 총리 및 전?현직 비서실장 3명의 이름이 모두 적혀 있었다. 비서실장은 문고리 권력이라고 불릴 만큼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사정의 칼끝이 살아있는 권력의 턱밑을 향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 밖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 역시 주로 친박계로 분류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들 옆에는 성 전 회장이 건넨 것으로 추측되는 돈의 금액도 함께 적혀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모든 것이 ‘의혹’으로 남아 있다. 메모지에 등장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검찰은 처음부터 고인의 유품인 이 메모지를 유족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건네지 않고 있다가 관련 보도가 나오자 하루가 지난 다음 날에야 뒤늦게 이를 공개하는가 하면, 수사를 촉구하는 식의 보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등 벌써 주춤거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성 전 회장이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밝힌 대로 검찰이 이명박 정권의 자원외교 비리와 자신의 배임·횡령 혐의를 딜하자고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현행법상 위반되는 불법수사로서 검찰의 신뢰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추후에 또 어떤 사실이 더 드러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수사에 착수할만한 단서는 충분하다. 엊그제 추가로 보도된 바와 같이 경남기업 회계장부에서 2007년 10월부터 7년 동안 32억원의 돈이 별도의 증빙 없이 현금으로 인출됐다는 사실 역시 성 전 회장이 정치인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시점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재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더불어 성 전 회장이 소지하고 있었던 두 개의 휴대전화 통화기록과 경남기업 관계자,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비망록 등 구체적인 물증을 서둘러 확보하는 데에도 검찰은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만약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과거 권력형 비리 사건들의 전례와 같이 적당히 여야 몇 명씩 끼워넣는 방식으로 구색 맞추기를 한다거나 다른 별건수사로 적당히 물타기를 하며 덮으려고 한다면 검찰 역시 성완종 게이트의 공범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또한, 성 전 회장의 사망을 핑계로 자원외교 비리 수사의 고삐를 늦춰서도 안 될 것이다. 경남기업은 61조 규모의 거대한 자원개발에서 6천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 제기되는 의혹처럼 검찰이 꼬리 자르기로 끝내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부정부패척결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은 만큼 이 부분에 대한 수사도 더욱 철저히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이제 4월 재보궐 선거가 약 2주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의 주요쟁점이 ‘누가 서민들의 밥그릇을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느냐’였다면, 이제는 ‘누가 깨끗한 손으로 서민들의 밥상을 차려줄 수 있느냐’로 옮겨질 것이다. 부도덕한 빚이 많은 정권은 국민을 위한 개혁을 추진할 수 없다. ‘도덕성’이라는 것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쉬운 액세서리가 아니라 국정운영을 위한 또 하나의 ‘능력’인 이유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단순히 4곳의 국회의원을 뽑는 것을 넘어 ‘깨끗하고 유능한 세력을 선택하는 선거’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정권의 악재를 반면교사로 삼아 새정치민주연합은 더 긴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대안으로서의 자격이 있는가’를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이를 담보할 수 있는 내부적 장치도 마련할 것이다. 유권자들께서도 감시의 눈을 더 크게 뜨길 바란다.

 이춘석<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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