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리 벚꽃길, 전군도로
100리 벚꽃길, 전군도로
  • 권익산
  • 승인 2015.04.02 15: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겨우내 가물었던 땅에 촉촉한 봄비가 내리면서 시내 곳곳에는 개나리와 벚꽃이 피어나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다음주말쯤이면 완주 송광사, 고창 선운사 등의 벚꽃 명소에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요즘에는 벚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많아졌지만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전북에서 벚꽃을 구경하려면 전군도로가 제격이었다. 전주에서 익산 군산으로 이어지는 백리 벚꽃 길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차량 때문에 시외버스가 우회해야 할 정도로 붐볐고, 사람들은 즐비한 포장마차 사이에서 봄을 만끽하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벚꽃이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심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전군도로에 벚꽃이 등장한 것은 1975년 이후이다. 일본 도쿄 인근에 살고 있던 ‘재일관동지구전북인회’라는 이름의 전북 출신 재일동포들이 성금 700만 원을 모아 고향에 보내온 것을 종자돈으로 한국 정부가 3천500만 원을 보태 전군도로에 벚나무 가로수 길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 전의 전군도로에는 포플러나무 등이 가로수로 심어져 있었다.

  대한제국 정부가 껍데기만 남은 1907년 일제는 한반도에 신작로를 놓기 시작했다. 군산-전주, 진남포-평양, 목포-광주, 대구-경주의 4개 노선이 그것으로 이들 노선은 지방의 중심 도시와 개항장을 잇는 길이었다. 개항장과 내륙 거점 도시를 연결하는 신작로를 개설함으로써 내륙으로 일본인과 일본 상품의 침투를 돕고 조선에서 생산된 쌀과 특산물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런 목적을 알고 있던 조상들은

 ‘문전의 옥토는 어찌되고 쪽박의 신세가 웬 말인가

 밭은 헐려서 신작로 되고 집은 헐려서 정거장되네

 말 깨나 허는 놈 재판소 가고 일 깨나 허는 놈 공동산 가네’

 라고 아리랑을 부르면서 설움을 달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1907년 건설을 시작하여 1908년 완공한 전군도로는 전주 다가동에서 군산항까지 총 길이 47km, 도로 폭 7m의 이차선 포장도로로 건설되었으며, 전국에서 처음으로 건설된 최초의 포장도로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다고 도로가 놓이자마자 자동차가 다닌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5인승 쌍두마차가 1인당 2원을 받고 전주-군산간 승객을 실어나르다가 1914년에 24인승 승합차가 전주 군산간 영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자동차가 다니기 시작하였다. 하루에 네 번 운행하는 승합차는 요즘으로 치면 콜택시처럼 승객의 집 앞에까지 와서 태우고 다녔다고 한다. 요금은 1원 20전으로 마차보다 오히려 저렴했고, 전주에서 군산까지 100분이면 도착했다고 하니 소요 시간도 많이 짧아졌다. 하지만 당시 노동자 하루 임금이 0.5원 정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보통의 조선인들이 이용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군산이 개항되고 전군도로가 놓이기 전까지 전북의 물류와 교통은 전주-삼례-강경으로 이어지는 길이 주로 이용되었다. 조선의 3대 시장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강경은 충청과 전라도의 물산이 모여 한양으로 운송되는 포구였기에 전주의 상인들은 강경을 이용하였다. 또한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만경강을 이용하는 뱃길도 적지 않게 이용되고 있었다. 전군도로의 개통으로 점차 전통적인 운송망은 쇠퇴하고 군산과 전주를 잇는 새로운 운송망을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새로운 운송망과 상권은 전북에 침투한 일본인들에 의해 점점 장악 되어갔다.

  1908년 개통 이후 95년간 전북에서 가장 차량 통행이 많은 도로 역할을 수행하던 전군도로는 2002년 새로운 산업도로가 개통됨으로써 이제는 한가한 도로가 되었다. 한때 전국에서 관광객이 모이던 100리 벚꽃 길도 시간의 흐름과 도로 공사 등으로 인해 예전 같지 않아 찾는 이가 많이 줄고 있다. 하지만 전군도로는 일제강점기 땀 흘려 농사지은 쌀이 실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조선의 소작인들의 눈물이 어려 있는 길이고, 학창 시절 전주로 통학하던 학생들의 추억이 서려 있는 길로 전군도로에는 전북의 근현대사가 오롯이 새겨져 있다.

 <원광고 교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