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방식의 차이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
  • 노대우
  • 승인 2015.04.0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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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은 사랑해야 한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마다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들이 태어나서 자라고 청춘 대부분을 함께한 그들의 조국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단, 집권세력에 반대하는 분들을 무조건 불순한 세력으로 단정하여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멍에를 씌우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겪어야 했던 우리나라의 어려운 시절을 영화화 한 국제시장이 국민들의 큰 반향을 일으켜 급기야는 관람객이 1,400만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 본 영화와는 별 관련이 없는 태극기 의무게양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우리사회에서 잠시나마 보수 진보로 나뉘어 논쟁을 벌였던 현실에 씁쓸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지나온 어려운 시절이었음에도 국기에 경례하며 국가를 존중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은 분들도 있었을 것이며 또 다른 사람들은 본 영화를 통해서 그 시절 사회상을 일부라도 이해할 수 있는 추억거리로 떠올리며 잠시나마 미소를 머금었던 분들도 있었을 것이다.

 가끔 음식점에 가서 “소주 한잔 주세요.” 하면 반드시 종업원이 “어떤 소주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누군가가 이렇게 답을 한다. “우리 동네 술로 주세요.” 여기서 술의 종류는 정리된다. 그런데 한잔 두잔 술이 걸쳐지면서 “어 친구, 이 소주 회사의 이익금이 모두 타지역으로 간다는데 꼭 이 술을 먹어야 돼?” 이게 우리 고향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그저 내 동네 것이니 그걸 먹어야 하고 우리지역 상품이니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동일지역 지방은행이라 하더라도 제공되는 서비스를 따지게 되며 타 은행보다 0.1%의 이율이라도 높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이용한다는 것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과 정보의 홍수로 인해 그저 막연하게 내 이웃이란 소속감에 매몰되지 않고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 국제시장의 인기에 편승해 태극기를 의무적으로 게양하는 것을 법제화하려 했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즘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국민들의 애국심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 감히 사고가 그쪽까지 미친다는 생각에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를 탓할 순 없겠지만, 현재의 정치권 등에서 벌어지는 이념 논쟁 속에서 나와 생각이 조금만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는 흑백논리가 광범위하게 퍼진 사회 현실에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이제는 정치권 등의 논리에 좌우되지 말고 우리 스스로 중심을 잡지 않으면 우리 대한민국은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어버리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질 것이다.

 오래전에 직원들과 노동조합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조직에 손해를 끼치는 파업을 꼭 해야 하느냐? 그래서 조직이 망해 버리면 당신네들도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라는 말에 “오죽하면 파업까지 하겠느냐”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할 즈음에 한 친구가 이렇게 얘기를 한다. “조합원이 조직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단지 조직을 사랑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한참이나 지난 이야기인데 지금도 필자의 머릿속에는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격렬한 파업 현장에서 사장님은 이 말이 쉽게 이해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조합원의 입장에서도 진정으로 조직을 사랑하는 방법치고는 과한 행동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속한 직장이 파멸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모름지기 조직에는 목표가 있고 그것은 구성원들의 안전과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 기본일진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그들이 사랑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자신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조국, 삶의 과정이 되어준 직장을 사랑하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을까? 오죽하면 떠나려고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 조직을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보면 일사불란하게 한 방향으로 가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는 방향이 같은 배를 타는 모든 분들께 행복과 기쁨을 줄 거라 확신하고 일을 추진해 갈 것이다. 그러나 어디 세상 일이 그렇게만 되겠는가? 목표는 동일하다 할지라도 사람마다 살아온 방식, 추구하는 가치 등에 따라 우선순위가 다르기 마련이다. 이게 민주주의 다양성이 아니겠는가? 모두의 동의하에 추진하기가 불가능하다면 가능한 대화도 많이 하고 어떤 때는 우회도 하여 반대자가 적은 방식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급하다고 “나를 따르라”는 방식은 용도 폐기된 구시대적 접근 방식이 아니겠는가?

 조직의 지도층에 있는 분들은 더 엄격하고 존경받는 행동을 해야 한다. 강제적인 방법이 아니라 그들의 책임감과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될 것이다. 조직의 수장이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알려주면 다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그만큼 성숙하다.

 조국을 사랑한다는 것.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이 중심을 잘 잡아가고 지도층에 있는 분들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노력을 하되 강제적인 방법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방식으로, 다소 느리게 보일지라도 많은 분들의 동의를 얻어 추진하면 된다. 성숙한 국민들을 믿고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억지로 대한민국을 사랑하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사랑이 넘치는 국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좀 늦은 것 같지만,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더 경제적인 대안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든다. 편견을 버리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여 “견해차는 틀림이 아니라 다름”임을 서로 인정하면 내가 태어난 조국, 내가 속한 조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대우<국민연금 전주완주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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